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때보다 800년 앞선 백제의 면직물이 발견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은 15일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 유물을 최근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1999년 6차 발굴조사 때 수습한 폭 2cm, 길이 12cm의 직물이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직물은 현재 부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제 중흥을 꿈꾸다-능산리사지(寺址)'특별전에서 공개되고 있다.
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학교(심연옥ㆍ정용재 교수)팀과 함께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통해 직물의 종단면을 관찰한 결과, 이 직물이 식물성 셀룰로스 섬유로 짠 면이며,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직물은 함께 출토된 창왕명사리감(사리를 담는 용기)의 제작연도가 서기 567년임을 감안할 때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문익점이 면직물의 재료인 목화씨를 들여온 것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最古)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지금까지 실물로 확인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은색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으로 고려 공민왕 때의 것이다.
이 직물은 또 고대의 일반적인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ㆍ씨실)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로 밝혀졌으며,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면직물이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라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지만, 학계에서는 옛 문헌을 통해 삼국시대에 이미 한반도에서 목화 재배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역사서인 '한원(翰苑)'에는 고구려 사람이 백첩포(白疊布)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문왕조(869년)에는 당나라로 백첩포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백첩포는 중앙아시아에서 면직물을 일컫는 현지어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심연옥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는 "삼국시대에도 면이 재배되던 중앙아시아나 인도, 중국 운남 지역 등과 교류를 했으므로 면 종자가 이러한 경로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다만 면은 온난하고 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여서 서리가 내리는 날이 많고 장마가 긴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아 소량만 재배된 귀한 직물로 중국에 보내는 예물이나 국가의례용으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면은 고려시대 들어 차츰 토착화되면서 생산량이 늘어가고 있었으나, 문익점은 사신으로 갔다가 유배된 교지(交趾ㆍ지금의 베트남 북부)에서 돌아오면서 기후조건이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비슷한 중국 강남지방의 개량된 면 종자를 갖고 들어왔기 때문에 이후 면직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라고 심 교수는 덧붙였다.
이번 조사성과는 부여박물관이 10월에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정식 보고될 예정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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