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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세대 1315] (4) 수렁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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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세대 1315] (4) 수렁에서 벗어나기

입력
2010.07.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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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원 면회온 어머니의 눈물에 '샛길' 벗어나 '새길'로

"'소년원에 있는 게 힘들면 변호사를 사서 기간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어머니 말씀에 목이 메어 답도 못했어요. 집안형편 뻔히 아는데, 밤낮 식당에서 고생하시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죽기살기로 공부에 매달렸죠."

18세 김기원(가명)군은 대학 2학년이다.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닌 또래보다 2년 빨리, 소년원에서 10개월을 보낸 것까지 감안하면 3년 빨리 대학에 들어간 셈이다. 작은 인생역전을 일군 김군을 그가 한때 머물렀던 경기 의왕시 고봉중ㆍ고등학교(옛 서울소년원)에서 12일 만났다.

김군은 오토바이 절도, 유해 화학물 흡입으로 2008년 4월 이곳에 들어왔다. 첫 면회 때 엄마의 눈물을 보며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는 고교과정 수업 후 하루 4시간씩만 잤다. 컴퓨터그래픽스 기능사, 국가공인정보기술자격(ITQ), 워드프로세서 2급 등 자격증이 늘어나자 자신감이 커졌다. 내친 김에 고졸 검정고시에도 도전했고, 4개월 만에 합격했다. 가출과 비행으로 멀어진 듯한 학업에 재미가 붙자 이듬해 1월 말 소년원을 나올 때는 수도권 대학의 전산관련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소년원이 김군에겐 새 삶을 일구게 해준 소중한 학교였던 셈이다. 당시 담임교사는 김군을 "긍정적인 사고로 무섭게 성장한 친구"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경기 안산시의 동네엔 함께 사고를 치고 다녔던 친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범죄의 늪으로 빠질 수는 없었다.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어머니와 상의해 경기 의정부시로 이사를 했다. 학비와 용돈을 벌기도 해야 했지만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저 미친 듯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기 중에는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고, 방학 때는 막노동까지 뛰었다. 범죄의 유혹은 차츰 시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김군이 잘못된 길로 접어든 건 자신만의 탓은 아니다. 그는 중1 때 술만 마시면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가출했고,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했다. 처음엔 일주일 정도로 끝나던 가출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길어졌다. 셀 수 없는 잦은 가출에 부모도 포기했다. 김군은 "아버지가 처음에는 혼내다가 나중에는 집을 나간 줄도 모르더라"고 했다.

가출의 끝에는 범죄와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배달을 하면서 타게 된 오토바이가 그에게는 마약과도 같았다. 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질주하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된 듯했다. 오토바이에 미쳐 일도 그만뒀다. 돈이 떨어져 길거리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쳤고 경찰에 붙잡혔다. "가출해서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신나게 노는 친구들뿐이었죠." 김군은 "그 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김군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도 이제는 달라졌다. 대학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그저 "잘 했다" 한마디뿐이었던 아버지가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아들이 맘 잡고 대학까지 들어갔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걸 김군은 잘 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별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는 짬짬이 아버지의 과일 행상을 돕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누나와 어머니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지난 설에 친척들이 모였는데 TV에서 청소년 범죄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누나는 바로 TV 채널을 돌렸고, 어머니는 '기름 값이 올랐다'며 화제를 바꿨죠. 서로 얼굴 보면서 빙긋 웃었어요."

김군은 요즘 컴퓨터보안 전문가를 새로운 목표로 정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학원 등록도 했다. "빨리 군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보란 듯 취직해야죠. 그리고 아이들에게 정말 자상한 아빠가 될 겁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소년원서 고민 상담할 기회조차 없었죠"

"어서 나가서 오토바이폭주 뛰고, 돈 벌어서 여자애들이랑 신나게 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지금 그렇다는 건 아니고 예전 소년원에 있을 때, 하하."

12일 오후 경기 의왕시 고봉중ㆍ고등학교(옛 서울소년원)에서 만난 권민수(15ㆍ가명)군의 얼굴은 해맑았다. 평범한 중학생처럼 짧게 깎은 머리는 단정했고, 가끔 눈웃음도 지었다. 그러나 민수는 소년원 생활이 벌써 두 번째다. 이번 달 임시퇴원을 위한 심사를 앞두고 있다.

민수는 중2 때인 2008년 대구 달서구의 집을 나와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동네 후배들에게 반지나 목걸이 등을 훔쳐오게 해 유흥비를 마련했고, 심야엔 70명씩 무리를 지어 도로를 역주행하는 오토바이폭주를 즐겼다. 남는 시간엔 술을 마셨고 시비가 붙으면 패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담배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피웠다.

결국 민수는 지난해 7월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특수절도와 무면허, 폭행 등의 혐의로 보호감호 처분을 받고 전주소년원에 수용됐다. 민수는 전혀 뉘우치지 않았다. "소년원에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해요. 예전에 폭주 뛰면서 술 마시고 놀던 친구였죠. 얼마나 반갑던지."

둘은 반성은커녕 영웅담(?)을 늘어놓으며 긴 세월을 견뎠다. "돈 훔치고 여자를 만나 논 얘기를 자꾸 하니까 또 하고 싶어져요. 소년원 생활 6개월간 어서 나가 예전처럼 놀자고 다짐했죠. 또 경찰에 걸리면 그때는 (경험이 있으니) 재판에서 말 좀 잘해 풀려날 수 있을 거라 여겼거든요." 사회에서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1315세대가 비슷한 처지의 또래를 만나는 건 소년원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밖에 있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 '소년원의 누구를 만나 잘 지내보라'고 일러주기도 한다"고 했다.

살짝 걱정이 됐던지 그는 자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전주소년원에 있을 때 사실 맘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상대가 없었어요. 하다못해 소년원 선생님들도 제대로 상담을 해준 적이 없어요." 속에 감춰진 고민을 꺼내볼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

올 1월 전주소년원을 나온 민수는 꿈꿔왔던 대로 신나게 놀다가 두 달 뒤인 3월 다시 소년원에 들어왔다. 죄명은 절도. 돈이 궁해 친구 집에서 귀금속을 훔친 과거 범행이 경찰에 걸린 것이다.

민수가 기자에게 고민의 한 자락을 살짝 내비쳤다.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이혼해 아버지는 새 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여기를 나가면 대구로 돌아가야 할 텐데, 학교도 가기 그렇고…. 맘을 잡고 싶어도 솔직히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확신은 못해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재범률 30% 웃돌아…사후관리 더 중요

"비행(非行)이나 범죄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1315 범죄자의 사회ㆍ경제ㆍ교육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재범 개연성은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형사정책연구원 청소년범죄연구센터 최인섭(56) 선임연구원은 1315의 재범을 막기 위해선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처벌 후 1315 범죄자가 안정적 단계로 진입할 때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1315의 재범률은 갈수록 증가 추세(표 참조)다. 미국은 성공적인 보호관찰 프로그램이냐, 실패한 프로그램이냐를 따질 때 재범률 30%를 기준으로 잡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소년범의 재범률은 32.4%다. 이는 교과교육과 직업능력개발훈련, 인성교육 등으로 짜인 현재의 교정 프로그램으로는 1315가 범죄의 수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 연구원은 "초범자 비율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 재범은 늘어나는 건 초범 이후 1315를 둘러싼 사회ㆍ경제적 여건이 변하지 않아 생기는 악순환"이라며 "청소년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관 기관들이 다차원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비행 유형이나 심각성 정도에 따라 개입 수위를 단계별로 세분화해 놓은 미국의 '청소년비행예방 종합전략 프로그램'이 좋은 본보기라고 덧붙였다.

최 연구원은 정부 및 민간 부문이 범죄 예방과 청소년 교정 등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중장기적 투자를 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각 기관들이 협력하고 정책을 조화해 추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의 독립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 일본 등 선진국처럼 범죄 예방 등의 활동에 기업들이 인적, 재정적으로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 예방이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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