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도 못 꾸던 영어 악기 배우고 야외수업도 가요. 고마워, 로또"
12일 저녁, 경기 시흥시 정왕동 이주단지에 자리잡은 푸른지역아동센터. 132㎡(40평) 남짓한 공간에 열 대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독서 선생님과 함께 책 읽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이 센터 정경(43) 소장은 “아이들이 이렇게 밝게 지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흥 토박이인 정 소장이 결혼도 않고 애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17년 전부터다. 정 소장은 “여대생 시절 교회 선교활동을 하면서 가난 때문에 방치된 채 자라는 어린이들을 접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 이들을 돌보는 게 나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대가가 컸다. 선교회 건물 1층에 어렵사리 ‘공부방’을 만들기는 했으나, 49명 어린이들을 돌보는데 들어가는 운영비의 상당부분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정 소장은 “처음에는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팔아 매월 수 백 만원씩을 투입해야 했다”고 말했다.
3년 전 지역아동센터로 거듭나면서 정부 지원(월 345만원)을 받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살림은 빠듯했다. 지원금이 전혀 없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한창 때인 아이들의 호기심과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건물 임대료,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선생님 3명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주고 나면 여전히 사비가 들어가야 했다.
정 소장은 “학습 프로그램비로 책정된 금액은 1인당 월 1만8,350원”이라며 “야외 수업 한번 하고 나면 돈이 바닥나서 아이들은 안에서 문제지만 풀어야 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우리는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지원금이 좀 더 많았다”며 “다른 센터들은 월 2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다”고 전했다.
빠듯한 자금사정과 함께 정 소장은 센터 어린이의 기를 살리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정 소장에 따르면 불과 2년 전만해도 이 곳은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이 마지 못해 오던 곳이었다. 정 소장은 “지금은 씩씩하게 잘 다니는 윤선(가명ㆍ11)이도 당시에는 ‘아동센터는 거지들만 가는 곳’이라는 주변의 놀림 때문에 오기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결손 가정에,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 모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며 “그렇지만 아이들이 그나마 여기에 오지 않으면 성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어긋날 가능성이 컸던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기를 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다행히도 애들 집에 모두 중고이기는 하지만 자가용이 있는 걸 확인한 뒤, ‘자가용 있으면 거지가 아니니까, 어깨 펴고 다니라’고 격려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푸른지역아동센터가 요즘처럼 활력이 넘치게 된 것은 ‘로또’등 복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복권에 당첨된 게 아니라, 2년 전부터 복권기금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소장이 복권기금을 소개받은 때는 2008년 6월이다. 정 소장의 사업을 후원하던 지인 한 분이 “정 선생, 로또 같은 복권 관리하는 복권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서 야간에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군. 그게 정 선생 하는 일 아닌가. 한번 신청해보라”고 한 것.
얘기를 듣고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니 신청 마감이 코앞이었다. 복권위원회가 사회공동복지보금회를 통해 벌이고 있는 ‘행복공감 별빛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이거구나라는 생각에 모든 선생님들한테 비상을 걸었죠. 밤을 새서 신청서를 썼습니다.” 30쪽짜리 신청서를 겨우 만들어 턱걸이로 제출했다.
결과는 의외로 빨리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7월부터 센터에 월 20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통지서가 배달됐다. “345만원이던 센터 운영비가 500만원이 넘게 된 셈인데, 아이들이 더 좋아했죠.”
200만원의 힘은 컸다. 우선 교육 프로그램의 질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독서, 영어 선생님 등 외부 전문가들이 센터를 찾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고, 악기연주와 만들기 등 예체능 활동이 추가됐다.
바깥 활동도 부쩍 늘었다. 아이들은 지난해 겨울 찜질방, 목욕탕에도 갔고, 올 초에는 센터에 나오는 49명 전원이 선생님들과 함께 영화 를 관람했다. 이번 여름에는 월 1회 정도 수영장과 놀이공원에도 갈 계획이다. 정 소장은 “어찌나 좋아하던지, 제가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혜택이 커지면서 센터의 인기도 높아지고, 이 곳을 찾는 어린이들의 성적도 함께 높아졌다. 학교 마치면 곧장 이리로 와서 공부한다는 문지은(12) 양은 “센터에 온 뒤로 수학 성적이 60점에서 92점으로 올랐어요. 등수는 비밀이지만 반에서 무조건 10등 안에 든다는 것만 알아주세요”하며 활짝 웃었다.
정 소장은 “다른 지역아동센터서도 오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가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거지들이 다니는 곳이라던 소리?이제 쑥 들어갔다”고 말했다.
17년 전과 비교하면 여건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정 소장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전국 3,500여개에 달하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지원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중산층 가구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쭉 맡긴다고 하잖아요. 한 달에 몇 십 만원씩 들여 학원 보내면 거기서 두 세 시간 정도는 아이들을 보살펴주니까요.”
정 소장은 “우리는 월 1만8,350원에 평균 6~7시간을 봐 주고 있다”며 “진정한 사회통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지원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글ㆍ사진=정민승기자 msj@hk.co.kr
■ 복권위 사회공헌 활동
물론 당첨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내가 복권을 구입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 지를 자세히 안다면, 비록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뿌듯함을 느낄 만도 하다. 복권은 어떤 상품과 비교해도 사회에 환원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 판매액의 40% 이상이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복지 인프라를 강화하는 재원으로 쓰인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위원장 이용걸 재정부 2차관)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 판매로 벌어들인 수입은 총 2조 4,718억원. 이 가운데 1조2,469억원(50.5%)이 당첨금으로 지급됐고, 수수료 등 판매비용으로는 2,238억원(9.1%)이 사용됐다. 나머지 40.4%의 절대 다수인 9,680억원이 복권기금으로 조성됐다. 결국 1,000원짜리 로또 복권 1장을 샀다면 당첨 여부와 관계없이 400원이 사회에 환원되는 셈이다.
이렇게 조성된 복권기금은 35%가 법정 배분사업에 사용되고 나머지 65%는 공익사업에 쓰인다. 복권기금 운용계획은 국가 예산과 마찬가지로 재정부 예산실 및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의결로 확정된다. 지난해 법정배분사업 기금 2,204억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금(441억원), 제주도개발 특별회계(441억원), 과학기술진흥기금(325억원), 국민체육진흥기금(268억원) 등에 쓰였다.
공익사업 기금(지난해 7,476억원)은 ▦서민 주거안정 지원(5,547억원) ▦국가유공자 복지(169억원)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 복지(1,444억원) ▦문화예술진흥(306억원) ▦재해재난 구호(10억원) 등 5개 사업에만 쓰일 수 있는데, 기금이 필요한 기관의 신청을 받아 복권위원회가 사업 심사를 벌여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김언성 복권위원회 복권총괄과장은 “복권을 구입하면 국민 누구나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며 “앞으로도 저소득 계층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발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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