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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5> 자립의 꿈 꾸는 탈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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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5> 자립의 꿈 꾸는 탈북자들

입력
2010.07.1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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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가명ㆍ40)씨가 택배물을 세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몇 번을 세어도 한 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이순자(가명ㆍ34)씨까지 거들어 일일이 손으로 짚어가며 다시 센 끝에 숨어있던 한 개를 찾아냈다. 부피가 작은, 납작한 물건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찾아낸 두 사람의 얼굴에 쑥스러우면서도 안도하는 작은 웃음이 지나간다. 택배회사로부터 물건을 받아 수취인에게 전해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지만,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 남짓이다 보니 아직은 물건 개수 세는 것 조차 틀릴 때가 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중계 9단지 아파트 상가에 있는 택배취급소 중계1호점은 7일 개소식과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통일부, 기획재정부, 서울시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등 조용한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는 제법 요란한 행사였는데, 그것은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이 주축이 돼 일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 택배기사까지 대체로 이 일을 환영하니 약간 들뜰 만도 했다. 택배기사는 수취인이 부재 중일 경우 물건을 전하기 위해 그 집을 다시 찾거나 경비원에게 맡겨야 하고, 경비원은 택배물 관리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하며, 수취인은 수취인대로 물건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등 기존의 택배 과정에 약간의 불편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택배취급소는 잘만 하면 그런 불편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는데다, 택배 물량의 증가 추세로 볼 때 제법 수익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이 일이 탈북자의 경제적 자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해 1년 동안 1인당 월 85만원의 급여를 지원하기로 했다.

택배취급소를 운영하는 함께일하는사람들의 대표 김대성(38)씨 역시 이 일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긴장이 된다. 그는 1997년 북한을 탈출, 중국에 머물다 2002년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다. 함께 일하는 김영희, 이순자씨는 각각 2010년, 2004년 남한에 왔는데 사진 촬영에는 응하면서도, 김대성 대표와 달리 아직은 조심스럽다며 실명과 사연을 알려주는데 주저했다.

중계1호점은 현대택배, 우체국택배, 대한통운택배, 동부택배, CJ택배 등과 계약해 물건을 받는데 지금은 초창기라서 물량을 다 처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가운데 동부, CJ 두 군데서만 받는다. 일이 손에 익는 대로 나머지 회사에서도 택배물을 받을 계획이다. 두 회사로부터 오는 택배물은 하루 80~100개 정도. 지금은 그래도 비수기라서 이 정도지만 추석 등 명절 때는 물량이 쏟아질 것이 확실하다. 그때에 대비해서라도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들은 택배기사가 물건을 내려 놓으면 전산망을 통해 받은 목록과 일일이 대조, 택배물이 제대로 왔는지 확인한 뒤 수취인 주소별로 분류해 카트에 싣고 가 전해준다. 중계 9단지의 2,400여 가구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걷는 거리가 짧고 지리 익히기도 쉬운 편이지만 요즘은 날이 더워 고역이다. 그래도 이들은 물건을 전해주고 사람들로부터 “고생한다”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남성 택배기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두 여성 김영희, 이순자씨가 물건을 전해주면 받는 사람들은 마음이 더 편하다고 한다. 실은 아파트 단지에서 제법 거창하게 개소식을 한 덕분에 주민 대부분이 택배취급소의 존재와, 그것을 탈북자들이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그 때문에 일하기가 한결 수월한 것이다. 김영희씨 등이 한번 물건을 돌리는데 2, 3시간 정도 걸리지만 하루 하루 일이 익숙해지면서 그 시간이 차츰 짧아지고 있다. 사무실을 찾아와 “혹시 내 택배물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주민까지 있으니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는 느낌이다.

김대성 대표를 포함해 지금은 3명의 탈북자가 일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김 대표는 손을 떼기로 돼 있다. 그 대신 중계 9단지 아파트 주민 2명이 합류해 김영희, 이순자씨와 함께 할 예정이기 때문에 남북 주민이 같은 일터에서 일을 하게 된다.

김대성 대표는 “작은 실수라도 해서는 안되며 신뢰를 잘 지켜야 한다”며 “책임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 일은 애초 노인에게 공공기관의 택배물 배달을 맡기는 노인택배사업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으며 통일부, 기획재정부, 중소기업청, 서울시 등의 도움을 얻었다. 굳이 덧붙이자면 김대성 대표가 남한에서 택배 일을 한 경험도 조금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김대성 대표는 북한에서 운전을 했다. 북한은 운전을 고급 기술로 인정해주는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차를 모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그러나 운전을 계속하려던 그의 뜻과 달리, 건설회사에 배치됨으로써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고 거기에서 커다란 심적 고통을 겪었다. 그렇게 갈등하며 몇 달을 지내던 중 어머니가 사망하고 부양의 책임이 줄자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탈북자 신분이 노출될 것을 염려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남한에 온 그는 북한에서 운전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택배회사에서 일을 했다. 겨우 일주일 견습을 하고 택배 일을 시작했는데 차가 나타나도 사람들이 골목길을 잘 비켜주지 않아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이 재미 있었고 물건을 배달하는 요령도 익힐 수 있었다.

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노원지역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대리운전을 하고 보험설계사를 하는 등 택배 말고도 여러 일을 했다. 학비를 면제받았지만 그래도 생활비 등을 마련하자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2시에 인천까지 대리운전을 해 2만5,000원을 벌었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택시비로 3만원을 썼고, 홍대 앞 클럽축제에 질서요원으로 나갔다가 클럽이란 것을 처음 구경하는 등 못해본 경험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차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남한 시스템과 겉도는 탈북자 또한 적지 않았다. 게다가 탈북자는 대체로 나이가 많고 대학 졸업장이 없어 대기업 등의 취업이 아직은 부족한 편이며 근로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지난해 8월 다른 탈북자 및 남한 내 지인들과 함께일하는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1만9,0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경제교육, 창업교육 등을 실시한다. 4월에는 미소금융중앙재단 복지사업자로 선정돼 탈북자에게 1인당 최고 5,000만원의 창업자금을 대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계1호점에서 일하는 김영희, 이순자씨는 창업교육을 받다가 연결된 사람들이다. 김대성 대표가 중계1호점에서 손을 떼면 이곳은 이순자씨가 운영하게 된다. 남한에서 식당일, 사무보조일 등을 한 그는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서 교육을 받던 중 택배취급소 일을 하게 됐다. 김영희씨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중계1호점에서 일을 배운 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또 다른 택배취급소를 차려 운영할 생각이다.

택배취급소는 지금은 택배회사가 맡기는 물건을 보관했다가 수취인에게 전하는 일을 하지만, 반대로 각 가정에서 다른 곳으로 보낼 물건을 받아 택배회사에 전하는 일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 안으로 서울, 경기지역 LH 아파트 단지에 30여개의 택배취급소를 설치하고 향후 전국 300여 LH 아파트 단지로 이를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경우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춰 새로운 부대사업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일자리 역시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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