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요동(遼東) 사람이 돼지를 치는데 흰 새끼를 낳았다. 특이하게 여겨 황제에게 바치려고 가다가 요서(遼西)에 이르니 그곳 돼지는 모두 흰지라, 메고 가던 흰 돼지를 버리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 건너 정보를 알았다면 먼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요동백시(遼東白豕)'는 본래 뜻과 달리 정보 격차를 이르는 말로도 읽힌다.
개인정보 과도한 노출 우려
최근 스마트 폰 사용자의 증가에 따라 날씨 교통 주유소 음식점 등 공공정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모바일 환경 하에서 어플리케이션 사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취득한 각종 정보를 어플리케이션 스토어에 올리고 있다. 21세기가 정보 격차 없는 '평평한 세상'이 될 것이며 국가나 기업이 아닌 개인이 정보시대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그런데 민간에서 진행되는 정보의 유통 과정이 반드시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비견한 예로 한때 경기도는 버스운행정보 제공을 중단했는가 하면 석유공사는 주유소 기름가격 정보의 이용을 차단하여 어플리케이션 사업자와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들었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국가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는 공공정보를 민간이 원활히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정보 제공지침을 마련하고 지난 달 정보화진흥원에 공공정보 활용지원센터를 개소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정보의 민간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가 보유 관리하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표준화하는 작업에 자칫 의욕이 앞서다 보면,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정보의 과도한 수집과 노출이 우려된다. 이는 과거 민간기업에 의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폐해가 클 수 있다. 상업적 사용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통제와 간섭이 더 큰 문제다. 조지 오웰의 소설 에서처럼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에 의해 감시되는 상황은 더 이상 미래 공상소설이 아닌 현실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도 알고 보면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우월한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간 정보를 공공 정보화하는 데 부딪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저작권이다. 지난 수년 사이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연구용역 과제가 많았다. 현실에서는 저작권을 발주자가 갖는다는 내용의 정형화한 계약서가 사용되고 있다. '을'의 지위에 있는 연구자는 발주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내용의 계약서에 날인을 사실상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연구자가 학술적 성격이 강한 연구 결과물을 자신의 별도 저서 또는 논문으로 출간하고자 할 때 발주자와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발주자가 연구자의 의견을 도외시하고 연구 결과물을 이용하거나 나아가 공공정보로 만들어 일반에 무상 제공할 경우, 연구자 입장에서는 저작권 문제를 거론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연구용역 계약의 불공정 약관성이 제기될 수 있다.
저작권 보호 세심한 노력을
그런 점에서 최근 국가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작성, 제출한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자신의 저서를 출판한 교수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징계하고 재임용 탈락처분을 한 것이 위법이라고 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의미가 작지 않다. 법원은 재정지원 연구개발 관리지침에 의해 대학에 귀속하도록 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인 해당 교수에게 저작권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이달 초 발효된 공공정보 제공지침에는 개인정보와 저작권 보호에 관한 조항이 들어 있다. 그런데 수많은 개인정보와 저작물이 섞여 있는 정보의 세계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왕에 문을 연 공공정보 활용지원센터의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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