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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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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입력
2010.07.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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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다. 동행한 딸아이는 반 고흐의 비슷한 게 아닐까 했다. 나 또한, 일본 나오시마(直島)의 밤하늘이'빛의 마술사'의 손을 거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지난 달 지추(地中)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와 연계한 야간 특별 프로그램을 앞두고의 이야기다.

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연작으로, 전시실 천정이 사각으로 뚫려있어, 올려다보는 하늘이 그대로 하나의 캔버스인 작품이다. 날씨와 시각에 따라 변하는 하늘은 작가가 부여한 빛과 색채를 입고 무궁무진한 파노라마를 펼친다. 말하자면 단 한 순간도 똑같은 작품이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작품인 셈이다.

저녁 일곱 시.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어스름의 박물관은 고요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오늘의 기상도는 맑음, 때때로 구름, 바람 약간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위한 조건은 그만하면 괜찮았다. 이제 사각의 하늘 아래 빙 둘러 앉은 우리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어두워지자 벽 주변은 노란 빛을 띠기 시작했고, 그에 대비되어 하늘의 푸른색은 더욱 선명해졌다. 어둠이 깊어짐에 따라 하늘은 짙푸르다 못해 검정에 가까워졌고 벨벳 같은 물질감을 주었다. 전혀 다른 하늘이었다. 40여 종류라던가, 컴퓨터로 조합된 LED의 빛과 색을 만나면서 달라진 것은 하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을 포위하고 있는 공간도 하늘과 미묘한 보색관계를 이루면서 천변만화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주 느리고 또 포착하기 힘들만큼 섬세해서, 고개를 쳐들고 오래 집중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30여분쯤 지나자 관람객들 사이에 약간씩 동요가 생겼다. 모두 먼 길을 온 사람들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드디어 꾸벅꾸벅 조는 사람까지 있었다. 날씨가 다시 흐려졌는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구름이 지나갔던가? 바람이 스쳤던가? 그 뿐이었다. 문득문득 적막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적요함이 엄습했을 뿐이다.

모두들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그렇게 하늘을 보기를 한 시간 여. 관계자가 종료를 알렸을 때 딸아이는 "낚였다!"고 했다. 그 순간 "예술은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라던 백남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긴 복도를 지나 미술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도 흘러나왔다. 별이 빛나는 밤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었을까? 그렇건 아니건 간에 그날 전시장 밖의 밤하늘은 '사기'의 굴욕을 상쇄하는 아름다운 피날레였다.

현대미술 앞에서 관객들은 늘 어리둥절하다. 바로 그 지점에 현대미술의 매력이 있다. 고정된 지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그래서 상상의 여지, 즉 관객으로서 참여 여지가 그만큼 많은 까닭이다. 전시 현장에서보다 그 후가 종종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감동이란 작품과의 대면 순간에 벼락같이 오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흔적도 없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느닷없이 발견할 때도 있다. 그날 이후, 모두가 보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하늘을 보기 위해 나는 자주자주 고개를 드는 버릇이 생겼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오늘의 먹구름은 그저 장마 탓인 것을.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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