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7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했다. 카스트로 정권 축출이 목적이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망명자 1,500명을 훈련시켜 쿠바 남쪽의 피그만에 상륙시켰다. 미국은 쿠바 민중의 호응을 얻어 쉽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쿠바 민중은 카스트로 혁명군을 지지했고,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 100여명이 죽고 1,200여명이 생포됐다. 미국은 포로들을 돌려받기 위해 5,300만달러를 해외원조 형태로 제공해야 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두뇌집단으로 평가 받았던 케네디 행정부의 오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한 사람의 판단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여 내린 판단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믿음이다. 하지만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조직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리학자인 미 예일대 어빙 재니스 교수는 케네디 행정부가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집단사고란 생각이 비슷하고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사고의 경향을 말한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러스크 국무장관, 덜레서 CIA 국장 등 정책 결정의 수뇌부는 대부분 하버드대 출신의 친구 사이였다.
■ 점심 때 중국집에서 잡채밥을 먹고 싶었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킨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한 조직에서 다수의 견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인기가 없는 법이다. 개인적 친분까지 있는 사이라면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쿠바 침공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슐레진저에 따르면, 몇몇 참모는 그 계획에 의심을 품었지만 '온건파' 딱지가 붙는 것이 두려웠고, 동료의 시선을 거스를 수 없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대사를 결정하는 회의가 마치 사교클럽의 파티처럼 훈훈한 동료애 속에서 이뤄진 셈이다.
■ 여권 내 비선조직의 국정농단 논란이 뜨겁다. 등장인물들이 사석에서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은 이른바 '고소영', 'S라인' 인맥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데다 국정철학도 비슷하다 보니, 논의 과정에서 직언과 상호 견제가 작동하기 어렵다. 촛불 사태를 불러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과 세종시 수정안이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코드인사' '회전문인사'가 초래할 수 있는 집단사고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견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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