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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화장실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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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화장실의 詩

입력
2010.07.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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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가 술집 화장실 벽에 붙어 있어 감동적이다.' 한밤에 선배 시인에게 휴대폰 문자를 받았지요. 무슨 문자인가 싶어 확인해보다 웃음보가 터졌지요. 어떤 상황인지 쉽게 그림이 그려졌지요. 술 좋아하는 선배는 어디서 한잔하다 오줌보가 차서 화장실 갔을 것이고, 소변기가 놓인 벽에 제 시가 붙어 있었겠지요.

선배의 '감동적'이라는 대상은 제 시가 아니라, 화장실에 시가 붙어있다는 것이겠지요. 저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영덕 바닷가에 작고 아름다운 펜션이 있는데 그 집 화장실에는 양변기에 앉는 손님의 눈높이에 작은 창을 내 동해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지요.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벽에 붙여놓은 제가 존경하는 분의 시를 읽었지요. 그분도 그곳에 앉았다 가시며 남긴 시여서 더욱 정겨웠지요. 시가 뭐 별건가요. 화장실에서 시를 읽을 수 있고 화장실 벽에 시를 붙여놓을 수 있지요.

저도 화장실에서 신간 시집을 자주 읽는데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는데요, 집중의 효과는 어떤 장소보다 분명하지요.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시를 읽으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화장실 벽에 시 한 편 붙여 놓을 줄 아는 여유가 아름다운 것이지요. 시를 읽지 않는 세태인데, 오줌 누고 똥 누는 짧은 시간에 시 한 편 읽고 가라는 마음, 그것이 감동이라는 것이지요.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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