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영화를 보기 전 마음의 각오를 좀 해야 할듯하다. 할리우드발 여름 블록버스터 '인셉션'은 몸을 곧추세우고 스크린에 정신을 집중할수록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시간 죽이기나 데이트용 영화로 생각하고 극장 문에 들어선다면 난처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일종의 두뇌 유희 블록버스터.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를 숙지해 가면 147분의 시간이 더욱 즐거울 영화다.
꿈에 의한, 꿈에 대한 영화
'인셉션'은 꿈에 의한, 꿈에 대한 영화다. 멀지 않은 미래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훔치거나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혹적인 화면 속에 풀어진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특수 기계를 사용하면 함께 잠을 자며 남의 꿈 속 배경들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고, 꿈 속을 활보할 수 있다. 꿈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 꿈 속에서 2중 3중 4중으로 꿈을 겹쳐 꿀 수 있다. 연쇄반응처럼 꿈은 꿈에 영향을 주고 사고에 변화의 파도를 일으켜 결국 현실을 바꿔놓게 된다. 공상과학영화라지만 과학적 근거를 딱히 대진 않는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이라는 가정법을 관객에게 들이밀고 여러 영화적 재미를 구축해간다.
줄거리는 '오션스 일레븐' 등 지능형 범죄영화나 '007'류의 첩보영화를 닮았다. 거대 기업의 후계자인 로버트(킬리언 머피)의 꿈 속에 들어가 현실의 기업 합병을 막아달라는 기업가 사이토(와타나베 켄)의 제안을 받은 '꿈 해킹 전문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야기를 이끈다. 꿈 속에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들었다가 그 꿈 때문에 아내 맬(마리온 코틸라르)을 잃은 코브는 아내 살해 누명을 쓰고 도망 중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사이토의 달콤한 제안에 코브는 여러 동료들을 규합해 로버트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데 로버트의 무의식 속 사람들이 무장한 보디가드 등으로 변환돼 코브 일행의 임무를 방해한다.
꿈 속이 활동 공간이다 보니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만한 장면들이 연속된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뉴욕 거리 한복판을 열차가 돌진하고, 우주가 아닌데도 등장인물들이 무중력 상태로 공중을 떠다닌다. 시가지가 접혀 서로 마주보게 되는 등 정말 꿈속에나 나올 도시 풍경이 스크린을 채운다. 가상현실과 실재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 '매트릭스'시리즈가 연상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야심 가득
출연 배우들도 화려하다. 21세기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드림 팀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디카프리오를 선두로, '라비앙 로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코틸라르, 할리우드의 샛별로 떠오른 조셉 고든 레빗, 엘렌 페이지 등이 진용을 갖췄다.
눈을 떼기 힘든 볼거리와 젊은 스타들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인물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다. 10분 이상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한 사내를 통해 반전의 묘미를 전해준 '메멘토'로 2000년 인상적인 할리우드 데뷔식을 치르고 2008년 '배트맨'시리즈 '다크 나이트'로 세계적 거물이 된 이 감독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착상부터 개봉까지 25년이 걸렸다는 '인셉션'은 특히나 놀란의 영화적 야심들로 가득하다. 꿈 속에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한 설정은 여러 장르들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멜로와 첩보, 범죄영화 위로 스릴러가 겹치며 다중적인 영화구조를 만들어낸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디어다. 죽이기도 힘들고 전염성도 강하다", "표적의 마음에 뿌린 씨가 생각으로 자라고 그 생각이 그의 본질이 되어 한 인간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두뇌를 자극하는 대사가 연신 이어지지만 놀란은 예술영화처럼 고독한 작가주의에의 동참을 독려하진 않는다.
놀란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공상과학 소설가 필립 K 딕 보다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인)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매트릭스'도 내게 좋은 사례가 됐다"며 "어찌 보면 매우 복잡한 철학적 개념들이 있어 보이지만 어느 면에선 정말 단순한 영화"라고 덧붙였다.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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