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에 자리한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인 지이엔㈜.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를 생산하는 이 업체는 이날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등 경영진이 직접 찾아와 납품단가 현황과 직원들의 복지 상황까지 꼼꼼히 챙긴 것.
현대차 관계자들은 이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각종 상생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품질 향상'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이 업체의 박기현(63)대표는 "직원 40명 밖에 안 되는 회사에 완성차 업체 경영진이 찾아 온 것 자체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며 "이렇게 소통하면 충분히 상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품질 향상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가 상생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3차 협력업체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섰다. 지금까지의 갑과 을의 관행에 비춰 보면 일대 '사건'이다. 최근 대기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밑바닥 하청 업체는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현대ㆍ기아차가 직접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을 비롯한 구매, 품질, 연구 담당 경영진이 이날 1차 협력사 대표들과 경기도 주변의 효창전기, 지이엔㈜, 다이나캐스트코리아 등 2차 협력사를 방문해 경영상의 애로사항을 직접 들었다. 윤 부회장은 "2차 협력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품질·기술 분야에 지속적 지원 활동을 펼치겠다"며 "부품산업진흥재단을 통해 뿌리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등 상생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2, 3차 협력업체는 이른바 완성차 및 1차 업체의 '갑을' 관계에도 한참 못 미치는 '병'의 관계에 해당한다. 2차 업체에서 물건을 1차 업체에 대면 1차 업체가 다시 현대ㆍ기아차에 납품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ㆍ기아차가 1차 협력 업체에 금융지원, 납품단가 인상 등 상생 지원을 해 주더라도 온기가 2,3차 업체까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윤 부회장은 "1차 협력사에 지원된 상생 활동과 현금 납품대금, 원자재가격 반영 등이 2,3차 협력사에게도 원활히 전달될 수 있도록 1차 협력사 대표들이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대ㆍ기아차 경영진의 이날 2,3차 업체 현장 점검은 지난달 체결한 제2기 공정거래협약에 따른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8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지금까지 이뤄졌던 상생 프로그램을 1차 협력업체에서 2,3차 협력업체로 확대, 총 2,691개 업체에 적용하기로 약속했다. 규모가 큰 1차 업체뿐 아니라 사정이 더 어려운 2,3차 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 가혹한 먹이 사슬 구조를 상생 협력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3차 협력사를 지원할 전담 부서를 마련했다. 협력사 신입사원을 상대로 한 기술학교도 운영할 방침이다. 특히 2,3차 하청업체가 가장 취약한 자금의 원활한 순환을 돕기 위해 현대ㆍ기아차가 직접 출연 기금을 기존 580억원에서 820억원으로 확대하고 납품대금 100%를 현금 결제하기로 했다. 또 1,0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 신용대출, 2,640억원 규모의 보증프로그램을 가동, 총 1조1,000여억원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 3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1차 협력업체였다"며 "완성차 업체가 직접 2,3차 업체까지 챙기면 신뢰관계가 한층 돈독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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