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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2부> (4.끝) 바늘구멍보다 좁은 패자부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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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2부> (4.끝) 바늘구멍보다 좁은 패자부활전

입력
2010.07.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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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신용자' 낙인 땐 소액대출도 그림의 떡… 자활의지 산산조작

#1.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김희숙(가명ㆍ41)씨는 2005년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하자 신용카드 대출로 병원비를 냈다. 하지만 이 카드 빚을 갚지 못하고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돼,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상환을 시작했다.

김씨는 2008년 기계가 더 필요해 구청 창업지원센터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보름 뒤 신용불량자라서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올해 5월에도 500만원 가량을 대출 받고자 미소금융에 상담을 받았지만, ▦공장의 월 매출액이 너무 많고 ▦신용불량에 ▦보증인도 없다면서 겨우 200만원을 대출해 주겠다고 해 포기했다. 그는 현실성 없는 정부의 저신용자 지원책을 '희망고문'이라 불렀다.

#2. 40대 주부 박모씨는 남편의 음주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이혼했다. 식당 일로 받는 월급으론 남편 사업자금을 대기위해 졌던 빚을 갚을 수가 없었고,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법원으로부터 면책승인은 받았으나 이씨는 이후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다. 소액대출을 위해 미소금융, 서울보증재단 등등 금융소외자 지원단체 여러 곳에 상담해 봤지만 면책자라는 이유로 바로 거절 당했다.

채무불이행자와 저신용자들은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 피라미드'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해당하는 계층. 자산 소득은커녕, 신용 때문에 금융기관 빚조차 낼 수 없는 이들 금융소외자에겐 지금 희망도 미래도 없다. 어떤 형태로든 살아갈 수 있도록, 자활을 통해 어떻게든 단 한 계단이라도 올라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하지만 오히려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만을 거듭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들 금융소외자들의 자활을 위해 미소금융을 비롯, 희망홀씨대출, 지역신보 영세자영업자 대출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금융소외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제도들은 결코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기관들이 상환의지나 현재의 소득, 담보 등에 앞서 과거의 채무불이행 전력부터 따지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 같은 채무불이행자, 그리고 박씨와 같은 개인파산ㆍ회생후 면책을 받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정부지원 대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카페 '면책자클럽'의 운영자 허 진(43)씨는 "면책자는 공공정보라는 기록이 5년 동안(종전 7년)이나 남아 있어 이 기간 동안 아무런 금융활동을 할 수 없다"며 "이는 법원에서 면책을 해 준 취지를 정부와 금융기관이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소금융도 그렇다. 지난해 12월15일 출범 이후 지난 9일까지, 미소금융을 통해 대출받은 사람은 1,449명, 금액은 115억원에 그치고 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한 미소금융재단 지점 관계자는 "출범 당시에는 상담을 받으려면 오랫동안 대기해야 할 정도로 북적거렸지만 대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것이 알려진 후 지금은 하루 상담자가 10명 미만"이라고 밝혔다. 어렵다고 모든 사람에게 무작정 대출을 해줄 수는 없지만, 미소금융의 문턱을 넘기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게 이용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송재영 민주노동당 민생본부장은 "정부 지원 대상인 7~9등급자들은 대부분 현재 채무불이행 상태이거나 채무불이행을 겪었던 적이 많다"이라면서 "신용등급은 낮은데 채무불이행이나 면책 등의 기록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조건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부 기관 등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사람들은 민간 기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난해 9월 신림동에 빵집을 연 이민수(가명ㆍ46)씨. 친척도 없고 생활고로 부인마저 떠난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익힌 제빵 기술로 제과점을 차리려고 했으나, 정부 보증기관들은 모두 거절했다. 3억원의 빚과 채무불이행 때문. 그러나 지난해 한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무보증 소액신용대출) 기관이 1,870만원을 대출해 줬고, 이씨의 제과점은 대성공을 거둬 벌써 4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책이 민간부문처럼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실제 저신용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다양한 사정을 분류하고,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같은 대상에 대한 중복 지원책은 통합하고,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저신용자를 위한 홍보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패자로 이어진다면, 양극화 해소는 결코 불가능하다. 실패자들에게도 재기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며, 그 문을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금융소외자들에 대한 지원과 서민대출도 좀 더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주문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기관·은행 등 30여개·자격요건도 제각각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서민대출'상품은 줄잡아 30개에 달한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부처 등 공적 기관의 서민금융 지원상품만 12개 기관에 28개에 달한다고 집계한 바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의 희망홀씨 대출과 사회단체들의 마이크로크레딧(무보증 소액신용대출)만 더해도 30개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와 기관마다 독자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데다 서민금융의 개념 정의도 제각각이어서 정확한 상품 개수를 세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 급여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민금융 지원제도는 저리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이뤄진다. 용도별로는 ▦사업자금 ▦생활자금 ▦주거자금으로 크게 나뉜다.

사업자금의 대표격인 미소금융 대출은 '자활 의지를 가진 저소득층에게 사업용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준다'는 취지로 지난해 말 시작됐다. 정부가 밝힌 올해 미소금융 지원규모는 2,228억원. 하지만 지금까지 대출실적은 115억원(7월9일 현재)으로 목표의 20분의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소금융은 물론, 보건복지부, 지역신용보증재단,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운영중인 창업ㆍ사업 대출은 모두 저신용ㆍ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자격요건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특히 '가로정비구역 등 지자체 규제구역 내 영업중인 무점포 사업자'(지역신보의 금융소외 자영업자 특례보증), '국민경제상 불요불급한 업종'(근로복지공단의 희망드림 창업지원) 등 애매하고도 까다로운 결격사유들도 많다. 대출 연체정보가 있으면 대부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내게 맞는 대출'을 찾기 어려울 경우, 서민금융 상담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금융감독원의 '서민금융119', 정부의 'OK주민서비스', 금융사들의 '한국이지론', 자산관리공사의 '새희망 네트워크' 등이 운영 중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활성화 대책은/ "시스템 일원화…자격요건 탄력 적용을"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패자부활'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수. 그 중에서도 서민생활안정과 자활을 돕는 서민대출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정부의 각종 서민금융사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를 만드는 것을 꼽았다. 현행 서민지원 대출상품은 ▦정부부처는 물론 공기업, 기금, 재단 등 지원 주체가 제각각 흩어져 있는 데다 ▦종류도 너무 많고 ▦그나마 대출정보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도 갖추지 못해, 정작 필요한 서민들에게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동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각 기관마다 지원 자격이나 요건이 제 각각이어서 서민들이 실제 대출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흩어져 있는 사업을 교통정리 해주고, 총괄하는 서민금융정책기관을 만들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실성과 동떨어진 지원 방식도 개선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신용등급, 대출한도, 이자율를 일괄적으로 정해 놓고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나 업종의 특성에 맞게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서민금융지원방식은 집단대출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사업진행 속도가 더딘 측면이 있다"며 "중앙정부가 전체사업을 조율하더라도 실제 대출과 관리는 지역자치단체나 민간기관에 맡겨 지역 밀착형 사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만 기대기보다 기존 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같은 민간 서민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서민들이 돈을 빌리기 어려운 것은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며 "서민대출에 적극 나서는 민간 서민금융기관에 대해선 금융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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