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보다 더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주요 사실관계에 대해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데다, 뚜렷한 물증이 쉽게 확보되지 않아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수사 템포로 볼 때,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의 소환 시점은 당초 이번 주 중반쯤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15일에도 검찰은 이 전 지원관을 부르지 않고, 김충곤 전 점검1팀장과 원모 조사관 등 다른 피의자 2명을 13, 14일에 이어 사흘째 불러 조사했다. 수사 의뢰된 4명 중 나머지 이모 경감은 이미 12일 조사를 받았다. 수사 착수 당시 검찰이 속전속결 방침을 밝혔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마디로, 아직은 이 전 지원관을 부를 준비가 덜 됐다는 얘기다.
검찰 안팎에서는 여전히 수사팀이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지원관은 물론, 김 전 팀장과 원씨까지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배척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검찰이 아직도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직권남용이나 강요죄는 입증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범죄"라며 "수사단계에서부터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전 지원관 소환 이후다. 이번 의혹의 '몸통'은 이 전 지원관보다 윗선이라는 의혹이 여전한 데다, 김종익(56) 전 KB한마음(현 NS한마음) 대표 외에 또 다른 사찰 피해자가 수십여명 더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의 성패는 민간인 사찰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윗선'이 있는지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것에 달려 있다.
물론, 검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등에 실제로 비선(秘線) 보고를 했다 해도 서류 형태 등의 명확한 증거를 남겨뒀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뒤늦은 총리실 압수수색으로 인해 관련자들의 증거 인멸 시간도 충분했다. 난관에 봉착한 이번 수사의 실마리는 결국 검찰이 이 전 지원관의 입을 여는 데 필요한 결정적 '한방'을 찾아낼 때에야 풀릴 수 있을 전망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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