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범죄행위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 활동은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기관에 의한 무분별한 민간 사찰을 감시하고 막아야 할 사법부가 스스로의 의무를 방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법원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주수도 회장과 제이유 네트워크가 "국정원 보고서 유출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국정원은 2004년 "제이유가 사채와 다단계사업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검사와 판사, 경찰관 등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보고서는 한 언론사 기자에게 전달돼 보도됐고, 검찰 수사결과 다단계사업과 관련한 사기, 횡령, 배임 혐의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뇌물살포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주 회장 등은 국정원이 국가정보원법이 정한 직무범위를 벗어나 위법한 정보수집 활동을 벌였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부장 문영화)는 지난해 5월 "제이유에 관한 범죄정보 수집 및 수사는 수사기관의 직무에 해당하는 것이지,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며 주 회장과 제이유에 총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법원에서도 "엄격한 법적 제한 없이 이뤄지는 국정원의 정보활동에 대해 사법부의 엄격한 판단이 이뤄진 첫 판결"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 여상훈)는 판결을 뒤집었다.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가 범죄정보이기 때문에 정보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보고서를 언론에 유출해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물어 1심 배상액의 절반인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제이유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유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최근 총리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파장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국가의 무분별한 사찰을 사실상 용인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 대한변협 법제이사인 김갑배 변호사는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법률에 근거해 행사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직권남용으로 처벌대상이 된다"면서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나 검찰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범죄자를 다루는데 정보기관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도 "항소심, 상고심은 국정원의 정보수집 자체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명백한 범죄정보일 경우에는 자기정보통제권의 보호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찰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향후 이와 다른 판례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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