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아름다운 연인 카미유 클로델. 그녀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2005년 뮤지컬 '아이다'로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의 차기작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을 무렵, 나는 과감히 그녀를 택했다. 뮤지컬 '카미유 클로델'(사람들은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동명 영화로 기억하곤 한다)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기다린 그림자 같았다.
덕수궁 돌담길에 보슬비가 내리던 날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떨림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곳에서 나는 블랙홀처럼 클로델을 매료시킨 로댕을 다시 만났다. 자신의 손 조각으로 그녀의 마음을 일순간에 앗아간 그는 '신의 손'으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고, '악마의 손'으로 여인의 토르소를 남겼다.
클로델이 직접 조각에 참여한 '지옥문' 앞에 서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뮤지컬에서 지옥문은 무대 전면의 가장 큰 세트였다. 그래서인지 5m에 달하는 완성물의 축소판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섬세하게 표현된 인간들의 형체는 지옥이 어떤 곳인지 가늠케 했고, 그 상단에 위치한 '생각하는 사람'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눈 밑의 깊은 그늘과 괴어 받친 손 때문에 일그러진 입술, 힘줄까지 느껴지는 근육을 가진 그는 금방이라도 일어나 미술관을 걸어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고뇌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조각상에게 묻고 싶었다. "긴 시간 동안 무엇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느냐"고.
뮤지컬 공연을 앞둔 나는 직접 조각을 배웠다. 무대에서는 석고로 제작된 소품을 들고 연기했다. 이때 좋아하던 '안드로메다'와 '다나이드'의 극적인 아름다움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영원한 우상' 앞에서는 심장이 요동쳤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그의 조각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조각과 같은 표정으로 감정이 이입되곤 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방도 따로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부숴버렸는데, 끝까지 남겨둔 '로댕의 초상'은 귀하디 귀한 것이었다. 또 내가 무대 위에서 직접 조각하기도 했던 '왈츠'와 클로델 자신을 표현한 듯한 '애원하는 여인' 앞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지막까지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불행으로 치달았던 클로델은 무엇을 그토록 애원했을까.
로댕전을 감상하면서 나는 수없이 전율했다. 내 안의 열정이 전하는 외침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면 용기를 갖고 과감해지라. 더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사랑하라." 로댕과 클로델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4년 전 무대에 선 것이나, 다시 그를 만난 것 모두 나한테는 큰 행운이었다.
파리 로댕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댕의 대표작 18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ㆍ최대 규모의 로댕 회고전인 '신의 손_로댕' 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립니다. 1577_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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