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TV드라마, 뮤지컬 등은 딱딱하게 느껴지기 쉬운 역사에 친근감을 유발할 수 있는 매개체다. 그러나 극적 감동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사실(史實)을 오도하고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을 위험성도 있다. 문학평론가 김응교(48ㆍ숙명여대 국문과 강사)씨는 최근 '한국문화연구18'에 기고한 논문 '명성황후의 문화콘텐츠와 역사읽기'에서 예술작품 등 각종 문화콘텐츠에 나타난 명성황후의 이미지가 왜곡과 신비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국망의 장본인에서 시대적 영웅으로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1930년대 김동인의 소설 에서 명성황후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소극적이면서 국정을 농단한 인물, 총명하지만 음탕하고 나라를 망친 독부(毒婦)로 묘사됐다. 사찰에 기도 비용을 탕진하고 무속인들을 불러들여 국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급변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프랑스 여성작가 줄리오 모리오의 장편소설 (1994), 이문열의 희곡 (1995)이 그런 작품들이다. 은 명성황후가 주인공인 1인칭 고백체 소설로 "나로 인해 전하를 배알하는 이가 거북스러워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대나무 발 뒤에 몸을 숨기지도 않습니다"라는 대사가 나오고, 에는 명성황후가 병풍 뒤에 숨지 않고 일본공사의 인사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전까지 소극적 인물로 묘사됐던 명성황후는 이때부터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김씨는 "이런 왕비가 무도한 일제 낭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강조됨으로써 민족적 공분을 유도하고 연민과 관심을 받았다"며 "이 작품들이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당시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새로운 영웅이 필요했던 외환위기라는 시대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죽음의 서열화, 사소한 것의 숭엄화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이던 1995년 초연된 뮤지컬 '명성황후'는 명성황후 신드롬의 기폭제가 됐다. 여기서 명성황후는 '조선의 잔다르크'로 성화(聖化)한다. 작품의 마지막은 명성황후가 가장 앞에 서고 함께 희생당한 궁녀들이 그 뒤편에서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하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 김씨는 이를 '죽음의 서열화'라고 해석했다. 그는 "명성황후의 죽음 외에 어떤 죽음도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그런 봉건적 세계관이 다시 재현되면서 그 서열을 숭엄하게 한다"며 "이는 역사의 주체가 영웅이라는 전근대적 역사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1년 방영된 TV드라마 '명성황후'는 만화같은 액션 신으로 역사적 사실성을 흐린 작품. 예컨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들은 하늘로 솟아 궁전 담을 한번에 넘는 닌자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일본인 살해자들은 실제로 문학자, 신문기자, 상인 들로 일본에 돌아가 개선장군 대접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대동아공영권의 우두머리인 천황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후진국 조선의 왕비 따위는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대 일본사회의 핵심 사상을 전파한 지사였다는 것이 김씨의 견해다. 김씨는 "액션을 가미하는 드라마식 접근은 재미는 있으나 사소한 것들이 장렬하게 표현되고 진정 진지하게 기억해야 할 역사 자체가 사소한 문제로 잊혀지게 한다"며 "객관적 역사 '인식'이 아니라 역사적 '감정'만을 생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해서도 김씨는 "명성황후와 고종, 호위무사의 삼각관계라는 멜로드라마에 애국주의를 포장한 작품"이라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성을 감상적 차원에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역사에 대한 왜곡이나 신비화는 사실에 기초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거짓이며 위험하다"면서 "민족적 감상이나 소비적 공상에 치우치지 않은 역사적 상상력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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