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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화적 사건 된 정의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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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화적 사건 된 정의론 읽기

입력
2010.07.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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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정찰 임무를 하던 미 해군 특수부대 4명이 염소를 몰고 가는 현지 농부 2명과 아이 1명을 발견했다. 군인들은 고민했다. 염소치기들을 그냥 놓아주면 그들이 미군의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었고, 무장도 하지 않은 그들을 죽이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4명은 투표를 했다. 1명은 기권했고, 그들은 염소치기들을 풀어주는 쪽에 표를 던졌다. 잠시 후 탈레반에게 포위된 미군들은 총격전 끝에 3명이 죽고, 그들을 구출하러 왔던 헬기까지 격추돼 타고 있던 16명이 모두 죽었다. 염소치기들을 놓아준 미군들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미국 플로리다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평소 2달러 하던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고, 250달러 하던 발전기를 2,000달러 내라 하고, 40달러 하던 모텔 방값을 160달러나 받는 바가지요금이 나타났다. 비상 상황의 가격폭리는 수요공급의 시장 법칙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남의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탐욕인가?

두 가지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미 12만부가 팔렸다는 책 에 나오는 내용들을 되풀이하는 것은, 이 예화들의 딜레마가 그만큼 생생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이 딜레마들이 바로 '정의를 묻는 질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책에서 앞의 두 이야기뿐 아니라 수많은 실제 사례를 들면서, 정의는 우리가 질문하고 고민하고 논쟁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가 요즘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되고 있다. 결코 쉽게 읽히지 않을 이 책이 대형 오프ㆍ온라인 서점들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 김용옥의 이후 인문서로는 8년 혹은 10년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들 하지만, 전자는 사실상 문학 책이고 후자도 본격 인문서라 하기 힘들다면, 이런 책이 1위에 오른 것은 아마 국내 베스트셀러 집계 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금 한국의 독자들은 왜 이 책을 읽고 있을까. 평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한국의 정치ㆍ경제 구조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했으면 그렇겠나."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책 제목부터 와 닿았을 것이다." 실제 이 책에는 지금 한국 현실에 그대로 대입해도 되는 질문과 사례들이 그득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매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은 정의로운가 아닌가(MB정부의 부자 감세 논란을 생각해보자), 대학 도서관 설립 기금으로 1,000만 달러를 내고 입학한 돈 많은 부모를 둔 학생은 대학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그런 능력이 안 되는 부모를 둔 학생은 불운할 뿐인가(기여입학제 도입 논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지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숨은 표'는?) 등등.

책에서 이런 질문들을 접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한국의 독자들은 자연히 괄호 안의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팔린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책은 언제나 변혁의 불쏘시개였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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