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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풍경의 '1910 자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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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풍경의 '1910 자유종'

입력
2010.07.1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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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년은 관객이 입장하기 전부터 PC 게임에 열중해 있다. 그 배우들을 둘러싼 풍경이 심상찮다. 전면의 대형 모니터에는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익숙한 영상들이 펼쳐진다. '영상 편집을 통한 한국 근대사의 이해'라는 메모가 첨부돼 있다. 극단 풍경의 '1910 자유종'은 정확히 100년 뒤, 현재의 풍경을 병치시키는 콜라주 연극이다. 한국연출가협회가 내놓는'한국 연극 100년 – 재발견'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귀를 의심하리만치 저렴한 제작비, 내공이 쌓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작년부터 섭외한 출연진, 연출가 박정희의 섬세한 시선 등이 한데 모여 빚어낸 무대는 연극의 의미를 천명하는 듯하다. 전쟁통에 굶주린 소녀의 사진과 PC 게임의 폭발음 등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 속에 개화기 작가 이해조의 신소설'자유종'을 보는 현재의 시선이 있다.

행세깨나 할 법한 네 부인이 각각 소반을 한 개씩 놓고 '자유종'에 나오는 토론 장면을 정확히 재현한다. 그들이 벌이는 토론의 주제에 따라 스크린에 관련 영상이 뜬다. 인습과 종교의 폐단을 질책하는 대목에서는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술 마시기 대회 하는 모습이 동시 투영되고, 어린이를 함부로 대하는 풍토를 개탄하며 신분제 타파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는'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며 인질극 끝에 자살한 1988년 지강헌 사건의 기록 사진이 등장한다.

무대에서 회고조의 감상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 같은 연출가의 시선은 현재의 몰가치적 상황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데 유효하다. 게임을 하던 청년이 스크린에 몰두해 있는 딴 청년의 옷을 뒤져 금품을 터는 대목이 올바른 자식 양육법에 대해 논하는 장면과 겹치도록 배치하는 식이다.

그러나 무대의 어조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은근하다. 새까만 옷으로 몸을 감싼 배우 한 명이 커다란 모형 나비 한 마리를 들고 와 객석 바로 앞에 놓더니, 무대를 빙그르르 돌고 퇴장하기를 두어 번. 개화를 역설하는 극중 여인들이 호접몽의 나비인지, 나비 효과의 나비인지는 객석이 판단하라는 암시다.

공연에 앞서 '한국 연극과 이해조'를 주제로 세미나와 포럼을 하는 등 어느 무대보다 탄탄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연극에서 받은 감동을 설명해 주기 족하다. 7~11일 나흘 만에 끝난 짧았던 공연 기간 역시 나비의 꿈 같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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