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째 거리 생활… 절도·폭행으로 벌써 7번 경찰서行
6일 땅거미가 질 무렵,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놀이터에서 상수(13ㆍ가명)를 만났다. 150㎝가 채 안 되는 키, 뼈만 앙상한 상수는 또래 혹은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아이들과 미끄럼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XX, XX 덥네." "오늘은 XX 뭐 하지." "XX 여기서 자기 싫은데." 10대 초반의 대화는 8할이 거침없는 욕설이었다.
상수 무리를 본 행인들은 "가출 비행 소년"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OOO번지가 상수의 서류상 주소, 그러나 그는 놀이터 미끄럼틀이나 PC방에서 주로 먹고 잔다. 벌써 6개월째다.
학교와 가정에 적응하지 못한 B(Bomb)세대 1315들 중에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집에서 피곤한 몸을 씻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할 시간에 상수처럼 가출한 무리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몸을 누일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매고 있다.
초등학생 가출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은 "가출 연령대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다시 초등학교로 점점 낮아지는데, 1315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더욱 심각하다. 거리는 이들이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집을 나가는 첫째 이유는 비정상적인 가정환경과 가정폭력이다. 2년 전 처음 가출을 시작한 상수도 그런 경우다. 상수의 부모는 8년 전 이혼했다. 아버지는 형을 데리고 나갔고 상수를 맡은 엄마는 몇 개월 후 집을 나갔다. 상수 곁에는 병든 70대 외할머니뿐이었다. 간혹 찾아오는 아버지는 "잘 지내냐, 공부 잘 하냐"는 살가운 안부대신 가출한 형의 행방을 모른다고 때렸다.
거리로 나온 상수는 또래 가출 소년처럼 경험과 나이가 많은 가출선배들의 먹잇감(?)이 됐다. 자신보다 어린 아이의 주머니를 털고, '앵벌이'(구걸)에 나서 번 돈을 가출선배에게 바쳤다. 벌이가 좋아 2만~3만원을 상납하면 하루가 평온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형들에게 맞았다.
학교는 상수 같은 아이들을 대부분 포기한다. 상수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수업이 안 된다. 주변 친구에게 피해만 줄 뿐이다. 청소년 쉼터로 보내야 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별반 해줄 것이 없다.
결국 가출 아이들은 거리에서 '그들만의 집단'을 만들 수밖에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아 서로를 의지하는 셈이다. 그들만의 룰에 따라 행동하면서 심각한 탈선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화여대 도현심(심리학과) 교수는 "인지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10대 초반 아이들이 옳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출한 1315는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가출 2년간 상수는 경찰서를 일곱 번 다녀왔다. 절도 세 번, 사유지 무단침입 두 번, 폭행 두 번. 형사책임이 없는 만 14세 미만의 이른바 촉법(觸法)소년이라 철창경험이 없을 뿐이다. 상수는 "얼마 전 열려 있는 반지하방 창문으로 들어가 30만원이나 훔쳤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부진 명지대(아동학과) 교수는 "이제 가정과 학교의 역할을 고민할 때가 됐다. 특히 학교가 중심이 돼 더 늦기 전에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연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 집·학교 싫어… 친구 따라서… 갈 곳 없어도 반복되는 가출중독
5일 오전 1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원, 10대 소녀 3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순찰 중이던 경찰이 다가가 "가출 신고가 돼 있는지 지구대로 가 확인해야 한다"고 하자 인근 주택가로 재빠르게 줄행랑을 쳤다. 그 뒤를 쫓았다.
이들은 17세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2주 전 이모양의 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아버지가 때리기만 하는데 들어가기 싫다"(김모양), "집이 집 같지 않다"(최모양) 등의 이유로 의기투합해 거리로 나섰다. 최양은 첫 가출이지만 김양과 이양은 15세였던 2008년 1년간 가출한 이후 세 번째다.
가출도 중독된다
가출 청소년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에 신고된 가출 청소년은 2만2,287명으로 소폭(3.5%) 줄어든 2008년을 제외하면 줄곧 증가세다. 지난해에는 초ㆍ중ㆍ고생 열명 중 한 명꼴(11.6%)로 집을 나갔다.
더 큰 문제는 중독성이다. 여성가족부가 2008년 전국 중ㆍ고교 재학생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유해환경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두 번 이상 가출한 청소년은 가출 경험자의 절반이상(54.4%)이었다. 최초 가출시기도 빨라져 초등학교 때 첫 가출을 한 청소년은 38.5%였다.
집을 나와도 갈 곳은 마땅치 않다. 1만원정도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PC방,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남자 아이들은 취객이나 더 어린 아이들의 돈을 뺏고,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 등 범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B세대 1315 가출의 일그러진 현실이다. 가출 소녀 A양은 "가출한 또래 중 성폭력을 당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지만 누구 하나 신고하거나 알리지 않는다. 경찰도 믿지 않는다. 혼자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왜 떠도는가
가출은 역시 가정문제 탓이 크다. 여가부의 조사결과 부모와의 갈등(19.4%), 부모간 갈등(9.6%), 부모의 신체적 학대(3.9%) 등 가정문제로 가출 충동을 느낀다고 대답한 학생이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 실제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가정폭력은 결손가정 등 소외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취재 중 만난 가출 소년 박모(14)군은 서울의 중산층 부모 밑에 살다 두 달 전 집을 나왔다. 박군은 "공부는 안 하고 기타만 튕긴다고 아버지가 기타를 발로 차 부수고 뺨을 때려 도망쳤다"고 말했다. 그의 어깨에 걸린 기타는 100만원 짜리라고 했다.
놀고 싶어서, 무작정 친구 따라 등 뚜렷한 이유 없는 가출도 38%나 됐다. 김은녕 성남청소년쉼터 소장은 "IMF 파동 이후 경제문제로 인한 가정의 와해, 부모의 역할 부재 등 환경적인 영향으로 가출하는 1315가 많다"며 "가정으로 돌아간다 해도 환경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가출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방치되는 아이들
이양 일행은 며칠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듯 매우 피곤해 보였다. 기자가 이들을 받아줄 청소년보호기관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한 청소년보호기관 관계자는 "무리 지어 다니는 아이들은 분위기를 흐려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가출 소녀 셋은 기자가 쥐어준 돈을 들고 인근 여관으로 향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안전망이 너무나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 제도는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낼 뿐 실효성이 없다"며 "가출 청소년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 시설에서 보호해주고, 자신의 가정이나 위탁가정 등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전문가 진단·대책/ "위탁가정·그룹 홈 등 장기적 대안 가정서 살게해야"
"1315의 가출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지 기관 등이 위태로운 가정에 조기 개입해 가족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정문제라는 게 그리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이 가출하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또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주는 일에 힘써야 한다."
전문가들은 1315의 가출을 통제하지 못할 때 그들이 우리 사회의 잠재적 '폭탄'(Bomb)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이 사회에 올바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탁가정, 그룹홈 등의 대안 가정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탁가정은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맡아 보호하고, 그룹홈도 5~7명 정도의 소규모로 구성돼 아이들이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준다.
백혜정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가출 소년들은 가정에서 방임된 상태로 지내다가, 집을 나온 이후에는 아예 규율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바로 범죄에 빠져들거나 성인이 된 후에도 범죄자가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백 위원은 "어린 나이에 가출한 아이들은 대안가정 등에 맡겨져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부진 명지대(아동학과) 교수도 "가출로 인해 규율이나 규칙 등을 부모나 다른 환경에서 경험하지 못하면 사회성 계발이 안돼 나중에 큰 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을 돌보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청소년쉼터는 대안가정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백 연구위원은 "중장기 청소년쉼터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곳에서 최장 2년 정도밖에 보호를 받지 못해 결국 쉼터를 나온 아이들은 다시 길거리를 방황하게 된다"며 "아이들의 발달에 맞춰 보호를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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