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취·왕따 나무라는 선생님에 "왜 간섭하냐" 주먹질까지
예전 학교 현장에서 문제의 주인공(?)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다. 중학생도 말썽을 일으키긴 했지만 사회문제로 비화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제의 중심에 초등6학년~중학 2학년에 해당하는 '1315 세대'가 있다. 집단 따돌림과 또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폭력 행위, 심지어 교사 폭행까지.
보통의 어른들 눈에는 1315 세대가 악의 없는 철부지처럼 보이겠지만 이미 통제불능 상태에 와 있다는 게 일선 교육 현장의 목소리다. "이대로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시한폭탄 같다는 의미에서 'B(Bomb)세대'로 불릴 만한 이들의 교실에선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도를 넘은 교실
지난해 8월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학급회장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지만 A군은 담임 교사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참다 못한 교사가 휴대폰을 빼앗자 A군은 "×××아! 남의 휴대폰을 왜 가져가? 내놔, ×××아!"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주지 않자 A군은 교사의 옆구리와 가슴을 의자로 때리고 "머리통을 쳐서 죽여버린다"는 등 폭언을 내뱉었다.
부모 세대의 초ㆍ중학교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창학(52ㆍ서울 수명중) 교사는 "4~5년 전부터 독서교육 등 인성 교육은 점차 사라지고 교육적 체벌 등 생활지도도 어려워지면서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문제 학생들이 많은 6학년 교실에 들어가는 데 대한 걱정 탓으로 출근조차 하기 싫다는 호소도 했다. 교사들은 "괜히 아이들을 건드렸다가 문제가 되면 신분상 불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체벌하는 이가 거의 없고 속만 끓이는 실정"이라고 했다.
마땅한 통제 장치가 없다 보니 일탈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의식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도 모 중학교 B교사는 최근 집단폭행의 대상이 된 반 학생을 구출하려다 혼쭐이 났다. 학생 서너 명이 C군의 휴대폰을 빼앗아 쓰고 있었는데 다른 학생이 "애들이 비싼 서비스를 써서 C군의 휴대폰 요금이 10만원도 넘게 나온다"고 귀띔한 터였다. 이날도 교실에 들어서다 같은 학생들이 C군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발로 밟고 있었다. "왜 C군을 괴롭히냐"고 나무라자 이들은 "장난인데요" "친구들끼리 노는 건데 왜 그러세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한 학생은 "퇴학 시킬 것도 아니면서 왜 저래"라며 어쩌지도 못할 거면서 무슨 간섭이냐는 식의 반응도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학생들간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 행위에 대한 무감각, 교사 폭행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학생ㆍ학부모의 부당행위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는 2007년 79건, 2008년 92건, 2009년 108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부분의 가정에 자녀가 한둘뿐인 상황에서 예전보다 소홀해진 가정교육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김창학 교사는 "얼마 전 중1~2 학생들 가운데 외동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니 95% 가까이가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는데, 이유는 자기 몫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며 "맞벌이 부부는 자녀에게 관심을 갖지 못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부유층의 경우엔 지나친 관심이 자녀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화(서울 서래초) 교사는 "어릴 때 자녀를 바로 잡지 못하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부모조차 어쩌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성교육을 등한시 한 채 입시 위주로 교육을 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오지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국장은 "학교 현장에서 입시지도가 아닌 생활지도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또래들과 다툼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인권과 타인에 대한 배려, 존중을 배울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석진 한국교총 교권국장은 "1315의 문제는 가정 교육의 부재, 교육적 체벌 및 훈계를 할 수 없는 상황, 성적 위주의 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더 이상 방치하면 학교 현장의 일탈 행위들이 더욱 낮은 학년대로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입에 밴 욕설…몸에 밴 폭력… "애들이 무섭다"
"성인인 제가, 마우스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마구 뛰어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믿기 어려웠어요."
주부 배모(41)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의 E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 소영(13ㆍ가명)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동급생들의 사소한 말다툼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사이버테러로 이어졌기 때문. 배씨는 "욕설의 수위와 성(性)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는 보호자가 보기에도 치가 떨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들이 소영에게 보낸 문자엔 "그지X" "배가 나온 게 홍00(같은 반 남자애)랑? 임신축하 .~"등의 언어폭력이 동원됐고, 소영의 싸이월드 홈페이지 방명록엔 '엄X'(네 엄마 XX) '썩X'(썩은 XX) 같은 욕들로 도배가 됐다. 심지어 "네 얼굴 XX 주물럭거려줄까" "교실에서 나대면 뒤져" 등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소영양은 충격으로 한 달 이상 학교를 나갈 수 없었고, 결국 올해 1월말 소영네는 경기 남양주시로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소영이는 밤이면 창을 잠그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행여 후에 기록이 남을까 봐 정신과 치료도 미뤘다.
배씨를 더 기막히게 한 건 가해학생들의 면면과 학교의 반응이었다. 겉보기엔 예의 바르고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은 소영이에게 특별한 원한도 없다고 했다. 배씨는 "가족끼리 왕래를 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다들 뭐 그게 대수냐는 투였다"고 했다. 교장은 끔찍한 욕설과 사이버테러를 알고도 "아이들 사이에 흔한 일이니 좋게 넘어가자"고 얼버무렸다.
소영이 사례는 기실 특별할 것도 없다. 현장에선 "어쩌다 이 지경까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부모 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들이라고 여겼던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한 시기질투를 부리고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각종 범죄에 빠져들기도 한다.
의 저자 김영화(57ㆍ서울 서래초등학교) 교사는 "예전에도 욕설이나 폭행 등 초등학교 6학년의 일탈 행위가 있었지만 훈계나 체벌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됐지만 현재 6학년 교실은 통제불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혼내기라도 하면 학부모가 전화해 교육청에 인격모독으로 신고하겠다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죽하면 해마다 2월말이면 6학년 담임을 배정하는데 모두가 거부해 교장이 애를 먹기 일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6학년 때 시작된 교실 붕괴의 조짐은 중학교로 올라가면 더욱 심해진다. 학생들간 문제에 더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올해 5월 인천의 한 중학교 2학년 김모(14)군은 체육교사 면전에 대고 "00새끼"라고 욕을 했다. 교사가 체벌을 하자 학부모는 교사를 형사 고소했다.
과거 청소년의 문제가 보통 중학교 3학년 이후에 집중됐다면, 요즘에는 그 연령대가 2~3년 가량 낮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달 또래 여학생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엽기적으로 시신을 유기한 사건의 주역들도 13~15세 아이들이었다. 아직 이성이 성숙하기 이전의 어린 나이다 보니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는 점에서 이들은 통제불능의 시한폭탄에 비유될 수 있다. 이름하여 B(Bomb)세대라 할 만하다.
하석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국장은 "피해학생 보호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등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실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관련 법률을 조속히 제정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 빵 심부름 55%, 괴롭힘 42%, 왕따 17%…
통제불능 B세대의 교실엔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폭력에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다. 폭력을 당해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학생이 절반을 넘었다. 폭력을 처음 당하는 시기도 중학교에서 차츰 초등학교로 내려오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지난해 말 전국 64개 초ㆍ중ㆍ고 학생 4,073명을 조사한 결과, 매점 심부름(빵셔틀), 괴롭힘 등을 학교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 학생이 절반에 달했다.
빵셔틀에 대해선 전체 응답자의 55.1%가, 괴롭힘은 42%, 성폭력은 28.2%, 집단 따돌림(왕따)은 16.9%가 '학교 폭력이 아니다' 혹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별 것 아니라는 인식 탓에 주위에 도움조차 요청하지 않는 피해학생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64.3%). 이유는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20.5%), '일이 커질 것 같아서'(19.9%), '이야기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18.1) 등의 순이었다.
학교폭력 피해경험 시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것도 심각하다. 어린 나이에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후 학교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조사결과, 피해학생 가운데 초등학교 때 처음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61.8%에 달해 2008년 56.1%보다 5.7%포인트 늘었다.
학교폭력은 무감각 속에서 일상화하고 있다. 가해학생들의 55.5%가 '장난이나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답했다. 이는 2008년 45.4%보다 10%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폭력에 점점 더 무뎌지는 양상을 보였다. 중학교 1학년 이하에서는 이유 없는 폭력이 14%였지만 중학교 2학년 이상에서는 25%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이유미 청예단 학교폭력SOS지원단장은 "학교폭력에 무감각한 현실은 청소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신고체계와 대처방법 교육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며 "알려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초등학교 때부터 실효성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전문가 진단·대책/ "10대 초반의 일탈을 소수 문제로 잘못 인식"
"교실 붕괴의 시발점이 중학교 3학년에서 초등학교 6학년으로 내려온 지는 꽤 됐습니다. 여전히 아동, 청소년의 문제를 10대 후반의 일탈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는 겁니다. 10대 초반 아이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아주 특별한 소수가 저지르는 특이한 현상이란 잣대를 적용하죠. 이들과의 소통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통제불능 1315 교실 문제의 핵심은 10대 초반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10대 초반이 또래집단 형성 초기라는 점, 이 때 형성되는 또래집단의 특성이 매우 폐쇄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10대 초반 아이들은 이미 어른의 보호와 관심이 줄어들고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들의 집단이 만든 룰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라며 "특히 중학교로 넘어가기 직전인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문제의 행동들이 발현된다"고 설명했다.
도현심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는 예전에 10대 후반에 겪었을 사회환경을 지금은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겪고 있다는 점을 모른다. 아이들이 이를 제대로 수용하는지, 올바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저 아이들만의 일, 즉 큰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소통과 이해'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담센터나 학부모, 교사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곧 학부모와 교사 등 주변 보호자들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부진 명지대 아동학과 교수는 "1315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이해를 구할 곳이 없다. 지속적으로 재학생들의 문제점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이에 더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학부모가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 학생들을 재교육할 수 있는 상담 교사와 상담센터의 운영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춰 일단 아이들의 고민을 받아들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실 회장은 "부모나 교사보다 집단의 우두머리 말을 더 잘 따르는 아이들의 시선을 어떻게 보호자들에게 끌어올 수 있을까, 결국 이들 또래집단과 어떻게 소통할지가 문제 해결의 성패를 결정짓게 된다"고 조언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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