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오래 사귄 이'가 친구라지만 진정한 벗이 되는데 꼭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20여년간 다른 언어를 쓰며 따로 살다 고작 이틀을 만났지만 작별할 때는 눈물을 쏟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며칠의 동행으로 눈빛이 통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11일 오전 중국 쓰촨성 청두시 청두정보과학대학. 한성대 대학원생 장수영(23ㆍ한국어교육2)씨는 이틀간의 홈스테이 기간 동안 함께 지낸 중국인 친구 디샤(22)와 눈물의 이별을 했다. 두 달간 배운 알량한 중국어와 온갖 몸짓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며 우정이 싹텄는데, 그들의 환대에 더 다가서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장은경(25ㆍ서울대 산림자원 대학원1)씨도 홈스테이 친구 아이비(23)의 손을 붙잡고 놓을 줄 몰랐다. 한 방에서 한국 배우의 화장법을 흉내 내는 등 소꿉친구처럼 지냈건만 양가 가족과 내년에 함께 티베트로 여행을 가자는 약속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이들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하고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이 주관한 '2010 한국청소년대표단 중국문화탐방단'의 일원으로 8일 중국을 찾았다. 39개 대학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 85명이 중국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중국 쓰촨성의 청두, 위난성의 쿤밍, 수도 베이징을 방문했다. 홈스테이 행사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방문은 중국 민간단체인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가 비용을 부담해 이뤄졌다. 민간단체가 한국 대학생을 초청하는 형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8박9일의 짧은 일정이라 자칫 형식적인 탐방으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배우며 가슴 속에서 우러난 견고한 우정을 쌓았다.
말이 안되면 몸과 리듬으로
8일 중국 청두시에 도착한 한국 탐방단을 맞은 건 중한우호협회에서 선발한 10명의 중국 자원봉사단이었다. 몇몇 학생간에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지만, 낯설고 서먹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이튿날이 되자 탐방단의 '미션수행'이 시작됐다.
손승권(26)씨를 비롯한 10여명의 한국 학생들은 한국과 중국 친구들의 손과 얼굴에 중국의 보물인 판다를 그렸다. 서로 장난스럽게 페이스페인팅을 한 채 판다번식연구기지를 방문했다. 이어 현재는 관광지로 변한 2008년 쓰촨대지진의 복구현장을 찾았다. 중국의 자원봉사자 쉰치(23)씨가 "이 곳에서 대지진으로 10만명이 사망했는데, 한국에서 구호팀을 보내주고 대통령도 가장 먼저 위문하러 왔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모두 기억한다"고 말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오후에는 청두정보과학대를 방문해 홈스테이 가정과 만났다. 탐방단, 중국 자원봉사자, 홈스테이 가정이 한데 섞여 '한중청소년의 밤'행사를 열었다. 이날 농구경기에 건장한 청두정보과학대 농구단이 등장하자 한국 학생들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경기 결과는 13대 16. 비록 중국 팀이 승리했지만 땀 흘리고 어깨를 부딪히며 치른 경기에서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사물놀이 공연을 선보였다. 중국 학생들을 무대로 이끌자 장구와 꽹과리 장단에 한중 청소년이 어깨춤을 추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중국 학생들은 88서울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로 화답했다.
너를 배우고 나를 알다
다음날 중국 학생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틀간의 홈스테이가 시작됐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틀이나 어떻게 말도 안 통하는 남의 집에 묵냐는 푸념과 걱정이 새 나왔지만 홈스테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현은지(21ㆍ숙명여대 역사문화학2)씨는 영중 통번역 강사로 일하고 있는 장란(29)의 집에 머물렀다. 13시간 동안 쓰촨의 거리를 걷기도 하고 쓰촨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은 최대한 맛보고 다녔다고 했다. 현씨는 "오히려 중국의 모습을 통해 나를 알게 된 것 같다"며 "덥고 습해 땀을 많이 흘리는 대신 매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잊는 모습에서 우리의 이열치열을 보기도 했고, 서로 경쟁하며 바쁘게만 살기보단 여유를 가지고 행복을 즐기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은경씨는 보통 한 자녀인 중국의 다른 가정과 달리 이례적으로 여동생도 있는 중국 여대생 아이비의 대가족과 이틀을 보냈다. 아이비와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는 말이 통할 리 없었을 터. 하지만 이틀간 중국인사말을 배우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명받은 할아버지는 장씨에게 한시를 직접 지어 선물하기도 했다.
장씨는 "직접 생활하다 보니 많이 베풀고 예의 바르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중국 가정의 장점을 더 많이 봤다"며 "상대의 마음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작은 경험이 앞으로 환경복지를 통한 국제교류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탐방단은 11일에는 윈난성 쿤밍으로 이동해 소수민족촌을 참관했다. 이들은 쿤밍에서 사흘을 보낸 뒤 베이징을 거쳐 16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청두ㆍ쿤밍(중국)=글ㆍ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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