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150m 정도 떨어진 대로변, 행정구역으로 마포구 동교동 167번지 일대. 경전철 공사가 한창인 현장과 주변 고층빌딩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3층짜리 칼국수 식당 '두리반'에서 농성이 벌어진 지 13일로 200일이 됐다.
서울시내에서만 하루에도 몇 건씩 열리는 집회, 농성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이곳 현장이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사실 두리반의 사연은 우리사회에서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사회적 모순이 도드라진 여러 현장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재개발(지구단위계획) 허가가 관할 구청에서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재벌 건설사 등이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땅 주인은 떼돈을 챙겼고, 세입자들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다. 갈 곳 없어 하루하루 자리를 지키던 세입자들은 어김없이 용역깡패들의 물리력과 협박에 시달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두리반 주인 안종려(52)씨도 이들 중 하나였다. 2005년 3월 주택청약예금을 해약하고 대출받은 2,500만원을 더해 권리금 1억원을 주고 건물 세를 얻어 개업했다. 소설을 쓰는 가난한 글쟁이 남편 유채림(50)씨 수입만으론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아들 키우기가 벅찼다. 그런데 지난해 12월24일 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변해버렸다. 다른 이들은 밤새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던 그날 이들은 식당 집기와 함께 용역업체에 의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사비용 300만원만 받고 나가란 말을 듣지 않다가 당한 일이었다. 결국 12월26일 새벽 부부는 철문을 부수고 다시 이곳에 들어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일이 흘렀다.
이들의 농성이 주목 받는 건 그 사연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용산참사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재개발 현장의 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깨달음 때문이리라. 올 1월 남편이 속한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소식이 전해지자, 2월부터는 인디밴드들이 이곳에서 릴레이공연을 시작했다. 그러다 5월1일 62개 밴드가 참여하는 공연에 3,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 이들을 응원했다. 두리반은 이처럼 새로운 농성문화도 보여주고 있다. 주인 남편이 작가인데다, 농성장소가 홍대 앞이라는 것이 농성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두리반이 세상에 알려질수록 용역업체들도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유씨는 전했다. 공연은 매주 월ㆍ금ㆍ토요일에 열린다. 앞으로는 매달 둘째 주 수요일 문학포럼도 열 계획이다.
유씨는 "현재 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등은 지구단위계획 세입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새로운 농성문화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생명이 배제된 개발사업에 대한 문제점이 더욱 더 공론화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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