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러일전쟁 중 고종 황제를 일본으로 납치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긴 독일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정상수(46)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12일 '일본이 고종을 일본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독일 외교문서 사본 2통을 공개했다. 이 문서는 1905년 2월14일과 6월2일 당시 서울 주재 독일 공사 폰 잘데른이 독일 본국으로 보낸 비밀전보들로, 정 교수가 2008년 8월 독일 외무부 정치문서 보관소에서 발견해 복사한 것이다.
2월에 발송된 첫번째 문서는 '일본인들이 고종을 일본으로 옮기려 했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고종이 완강히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문서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2세가 읽었다는 표시가 있으며, 여백에는 빌헬름2세가 '이런 시도가 성공할 리가 없다'라고 쓴 메모도 남아있다.
6월에 작성된 두 번째 문서는 2월 문서의 내용을 확인해주는 전보로 잘데른이 당시 서울 주재 미국 공사인 모건에게서 들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보호국화하고 고종을 폐위시켜 일본으로 납치하고자 영국에 문의해 동의를 받았다. 일본은 같은 내용을 미국에도 문의했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은 보호국화 부분에 대한 결정은 유보했고 고종의 폐위와 납치에 대해서는 비판했다'는 내용이다. 영국은 당시 일본과 동맹국이었다.
정 교수는 "행위 주체가 일본인으로만 기록돼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불명확해 일본, 미국 등의 자료와도 비교해야 한다"며 "고종은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 폐위당했지만 이 문서들은 일본이 이미 1905년께부터 고종을 한국 강제병합의 큰 걸림돌로 여겼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았을 때로, 한국을 보호국화하지 않고 바로 강제병합하려는 일본 군부세력에 의해 고종 납치 계획이 논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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