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마이클 샌델(57) 하버드대 교수의 (김영사 발행)가 오프라인서점 교보문고와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등의 7월 첫주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모두 1위에 올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인문서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2002년 이후 8년, 철학서로는 2000년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출판계는 '문화적 사건'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출판사 측은 "독자층의 70%가량이 20~30대이며, 여성 독자들도 40%대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왜 '정의'를 묻고 있는가. 정의론 분야 전문가인 장동진(5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서평가 이현우(42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씨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현우= 저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블로그에 소개했습니다.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고 바랬는데, 제가 걱정할 게 전혀 아니었어요.(웃음)
그동안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들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고 이론가들이 여러 번 방한하기도 했고 강연집도 나와 있어요. 근데 이런 책들은 다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열풍이 마이클 샌델이란 저자나 정치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럼 뭐냐. 우선 타이틀이 주는 효과인데, 천안함 사건, 4대강 논란, 지방선거 국면에서 현 정부의 실정이 도마에 오르면서 란 제목의 문제 제기가 시의적절했어요. 2008년 촛불 정국 때도 이란 책이 1만부 정도 나갔다고 합니다. 이 책도 수만 부 정도는 나가겠구나 예상은 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면 뭘까.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점입니다. 하버드 효과 얘기들을 하지만, 하버드 최고 인기 강의라 해도 읽기 어려우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겠죠.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벤담이니 칸트, 롤스는 사실 쉽게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철학자들 얘기를 하는데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거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고. 독자들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거 같아요. 폼으로 읽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문서로 크게 화제가 된 리처드 도킨스의 도 많이 팔렸지만 실제로 다 읽은 독자는 많은 거 같지 않아요. 근데 이 책은 독자들이 별점을 네댓 개 주면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서평을 남겨요. 그만큼 읽고 공감했다는 뜻이죠.
▦장동진= 또 다른 원인으로는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현 정당정치에 국민들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이들이 과연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파당적 이익을 대변하는데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의'란 말이 우리사회의 어떤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근본 원칙 하에서 움직이고 작동해야 하는가, 서양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런 관심을 촉발시킨 것이죠.
특히 청년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20대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 사회의 비전에 대해서 뭔가 암울하다, 부당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해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20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는 거죠. 한편으로 그들이 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고요. 공평한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불만과 이런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얽혀서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현 정부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세워진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정부인데도, 촛불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게 어쩌면 모순적인데요. 문제는 우리사회의 제도적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십년 간의 노력을 통해 성취된 것이긴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내실이 필요하다는 거죠. 민주주의는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부패나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나오니까요. 그 때문에 이 책이 던지는 정의라는 기표가 화두처럼 젊은이들에게 와 닿았다고 봅니다.
▦장=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의 담론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과거에는 정의라는 게 독재정권 타도하고 민주주의 확립하는 거였죠. 그게 명백했기 때문에 따로 정의라는 담론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대두되면서 학자들 간에 이론적인 면에서 논의가 오갔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정의 담론이 일반 담론으로 확대된다면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원칙에 대해 새롭게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운영 원칙입니다. 자유주의적 이념, 시장적 원리, 민주주의 원리 등의 큰 근간이 어떻게 조합돼야 하느냐는 점인데, 이 원리가 구체화되면 헌법이 되고 더욱 세분화하면 법과 정책이 되겠죠. 이 근본 원칙이 잘못되면 어떤 사람은 유리하고 어떤 사람은 불리하게 되는,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양산하게 되는 겁니다. 정의 담론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새삼 인식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샌델이 책 결론부에서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나 공동선의 정치가 한국적 정서와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1970~80년대에 자유주의가 주입됐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족애나 애국심 등이 더 친숙한 가치이죠. 그런 점도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아요.
▦장= 이 책이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공동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적 정서와 맞아떨어진 부분입니다. 샌델은 또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의 자유에 대해 구조적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런 점은 국내 진보 진영의 생각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샌델은 중도좌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고, 이럴 경우 '확대된 국가'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샌델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고 정치적 영역에서도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데, 중립적 자유주의자가 보기엔 이게 낭만적 생각이라는 거예요. 도덕적 판단을 개입시키면 매우 복잡해집니다. 샌델이 말하는 '덕성 정치'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실현될 경우 '강한 국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어요. 그의 주장은 아직 이론적으로 완성이 안됐다고 생각해요. 책의 뒷부분이 앞부분과 달리 명쾌하지 않은 것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정의 담론이 확산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제도 여하에 따라 우리 삶의 조건은 달라집니다. 정의가 이제 막 사회적 담론이 되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ㆍ사진)은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가다. 브랜다이스대 졸업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7세 때인 1980년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됐고,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하버드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 '정의'는 2007년 가을 학기 수강생이 하버드대 사상 최대인 1,115명을 기록하는 등 20여년 간 1만 4,0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이 강의는 하버드대와 보스턴 공영방송(WGBH)이 2007년 편당 50분의 TV시리즈 12편으로 제작해 방송했는데, 온라인(www.justiceharvard.org)으로 강의를 보면서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다.
정리=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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