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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천안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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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천안함의 추억

입력
2010.07.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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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간이던가, 선생님이 우스개 삼아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여러 나라의 국민성, 요즘 말로 사회적 집단행동양식을 길거리 싸움 구경에 비유했다. 낡은 기억으로는 대충 이렇다.

먼저 서구 합리주의를 대표하는 영국. 행인들은 말다툼을 경청하다 찬동하는 쪽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이내 대세가 갈린다. 세 불리한 쪽은 선뜻 사과하고 악수한 다음, 모자를 고쳐 쓰고 제 갈 길을 간다.

다음은 정열적인 남미 브라질. 싸우는 연유를 듣고는 두 패로 짝 갈려 열띤 응원을 한다. 삼삼칠 박수에 삼바 춤까지, 싸움 구경이 집단 놀이가 된다. 여기도 해피 엔딩이다.

딜레마 외면한 엉뚱한 다툼

마지막으로 한국. 무턱대고 끼어들어 엉뚱한 다툼으로 번지기 일쑤다.'당신이 뭔데''당신이라니''왜 반말이야'라고 삿대질하다 뒤엉켜 난장판이 된다. 시비는 가리지 못한 채, 함께 파출소 행으로 끝난다. '천안함 공격'을 규탄한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멋대로 국민성을 논한다고 욕할 지 모르나, 천안함 사태에 우리 사회가 집단 반응한 모습을 성찰하자는 뜻이다. 처음부터 냉정하게 시비를 가리거나, 내놓고 진솔한 주장을 편 이가 많지 않다.

사태 직후 칼럼에서'천안함 딜레마'를 일깨웠다. 기뢰 수중폭발로 짐작했지만, 북한이 몰래 기뢰를 부설하거나 어뢰를 쏘고 달아났더라도 침투 흔적과 파편 등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운 좋게 파편을 찾아도 북한과 연결 짓기 어려운 딜레마가 염려됐다.

나만 그리 생각했을 리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부의 서툰 대응을 탓하고, 지레 강경 대응을 외치거나 주변적 의혹에 몰두했다. 좌초설 충돌설 등 온갖 근거 없는 억측과 황당한 은폐ㆍ조작 의혹을 전문 학자들까지 분별없이 되뇌는 것에 놀랐다.

합동조사단의'북한 소행'결론을 증거 부족이라고 배척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과 진보 쪽은 해외 학자를 동원해'수중폭발'조차 부정했다. 난해한 알루미늄 흡착물 논란 등 언뜻 과학적 반론인 듯하지만, 어뢰 추진체의 '1번'페인트 글씨가 폭발에 녹지 않고 남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이 과학에 충실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릴 적 갖고 놀던 폭음탄 등을 감싼 포장지 일부가 폭발 후에도 온전한 과학 원리를 특수강 어뢰 추진체에 적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유사(類似) 과학적 논쟁의 진실이 무엇이든, 안보리는 천안함이 외부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규정했다. 북한을 노골적으로 지목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피격ㆍ수중폭발은 공인한 셈이다. 비록 우리와 북한을 각기 편드는 주변국의 전략적 이해를 타협한 결과이지만, 진보와 반정부 쪽이'외교 실패'라고 비웃는 것은 이상하다. 사태 자체의 딜레마를 외면하는 강경 보수가 중국과 정부를 비난하며 떠들 말이 아닌가.

지방선거 이후, 약삭빠른 보수는'대북 응징'대열에서 슬며시 발을 뺐다. 꼴통 보수도 열렬한 의지는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진보ㆍ반정부가 정부의 '출구 전략'을 촉구하는 건 엉뚱하고 속보이는 짓이다. 출구 전략(exit strategy)은 원래 명분과 목적이 뚜렷하지 못한 미국의 해외 개입 수렁에서 체면을 건져 빠져 나오는 방편을 뜻한다. 매사 어리석은 정부가 천안함 딜레마를 그리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 쪽은 북한의 도발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모든 게 정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되풀이될 북한의 도발

정부가 대북 정책을 바꾸고 6자 회담을 서두르면 평화와 안정이 올까. 북한의 도발 행태와 역대 정부, 미국과 주변국의 대응 양상은 늘 비슷하다. 한반도 평화도 영구미제로 남았다. 북핵 해결을 위해 천안함을 잊으라는 이들이 진심으로 북핵 해결 가능성을 믿는다고 보기 어렵다.

죽은 자보다 산 자의 안녕을 먼저 돌보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러나 그렇게 천안함을 추억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해서, 북의 도발도 역사의 유물이 될 리 없다. 잊을 만 하면 처럼 되풀이 될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m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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