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종시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방선거에서 수정안이 정치적 패배를 맛본 뒤로, 그리고 국회표결을 통해 법적 패배까지 확인한 뒤로, 세종시는 '잊혀진 도시'가 되다시피 했다. 정국을 그토록 뜨겁게 달궜고, 국론을 두 동강나게 했던 이슈치고는 참으로 싱거운 결말이다.
특히 정부는 세종시의 '세'자도 입에 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옳다'고 주장했던 수정안을 폐기하고, '틀리다'고 했던 원안을 추진해야 하는 곤혹스러움. 하지만 그 굴욕감을 넘어, 왜 수정안이 실패로 끝나게 되었는지 이젠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추후 어떤 정책이든 이런 결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정부(특히 청와대)가 수정안 무산을 박근혜 전 대표나 야당 탓으로만 돌린다면, 더 비참해질 뿐이다. 정부는 수정안 추진과 그 마무리 과정에서 적어도 세 가지의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이해할 수 없는 입법. 민감한 법안일수록 입법 전 완벽한 당정 조율을 거치는 게 상식이지만, 수정안은 그렇지 못했다. 정부는 "친박의 반대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야당이 반대하는데 여당 내에서조차 합의되지 못한 법안을 국회에 내는 것은 도대체 무슨 태도인지. 모든 법안 발의는 국회를 통과해서 발효되는 것이 목표다. 결국 정부는 통과되지도 못할 법안을 국회에 던져놓은 셈인데, 이건 분명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둘째, 열정의 부족. 수정안이 공론화된 것은 정운찬 총리 취임이 계기였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 부결로 수정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총리로 시작해 국회에서 끝날 때까지,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세종시가 원안으로 가는 게 그토록 잘못된 길이라면,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막아야 했다. 박 전 대표를 설득하든 흥정을 하든, 아니면 국민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호소와 읍소라도 했어야 했다. "총리 뒤에 숨었다"는 비판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차례 라디오연설과 청와대 참모가 전해주는 발언 정도로는 수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열정을 결코 느낄 수 없었다.
셋째, 승복의 자세. 나도 개인적으론 행정부를 쪼개는 원안보다 수정안이 훨씬 낫다고 믿지만, 어쨌든 수정안은 졌고 원안이 이겼다. 그렇다면 정부는 내키든 내키지 않든, 원안의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고칠 게 있다면 고치고, 더 줄게 있다면 줘야 한다. 그게 책임지는 정부의 자세일 텐데, 지금은 "내 말 안 듣더니 나중에 봐라" 식의 느낌을 받게 한다.
12일 세종시 이전 대상기관과 일정이 발표됐지만, 그걸론 곤란하다. 수정안이 좌초됐더라도 원안의 세종시를 명품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내놓는다면, 정부의 '쿨함'에 국민들은 기꺼이 박수를 보낼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정부는 집권 후반부는 일자리창출과 서민생활지원에 올인하겠다고 한다. 확실히 그쪽은 이 대통령에게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다. 정책방향으로서도 옳을 뿐 아니라, 잘하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저절로 성공은 없다. 세종시처럼 했다가는 결과는 자명하다. 이쯤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자성을 담은 '수정안 실패 백서'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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