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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54> 금리정책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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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54> 금리정책의 딜레마

입력
2010.07.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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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 4월1일 한은 총재직을 시작하여 2006년 3월 말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정책금리를 4.0%에서 시작하여 4.0%로 마쳤다. 취임 직후인 2002년 5월에 정책금리를 4.0%에서 4.25%로 올리고 이것을 다음해 5월에 4.0%로 다시 내린 다음 2004년 11월의 3.25%까지 계속 내렸다가 그 뒤 4.0%까지 다시 올린 것이다. 나의 재임 중 금리를 낮게 유지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상승이 유발되었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러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경우가 아니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모든 나라에서 거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개방화된 환경에서 저임금 중국경제의 부상으로 1990년대 이후의 세계경제는 고성장의 호황을 누리면서도 장기간 저물가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장기 저물가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가 부동산 거품 속에서도 저금리기조를 유지했으며 우리 또한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기에 더하여 우리대로의 특수한 사정이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한다.

2002년은 우리 경제가 1997년의 외환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정상궤도에 들어선 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 경제성장률이 7.2%에 이르고 소비자 물가는 2.8%로 안정되었으며 국제수지는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 가운데 주가는 연중 32%나 오르고 부동산 값은 크게 올라 자산거품의 징후가 뚜렷했다. 그래서 나는 취임 다음 달인 5월에 정책금리를 4.0%에서 4.25%로 올렸던 것이다.

나는 금리를 계속 좀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부동산 투기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 동안 심각한 경기불황과 부동산침체를 경험했는데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부동산에 대한 온갖 규제를 모두 해제한 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가 지속되고 경기회복에 따라 주택대출이 급증하였는데 주택공급은 IMF위기 이후 위축되어 2001년부터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집값을 보면 2000년에는 4%상승에 그쳤으나 그 다음해에는 19% 2002년에는 31%나 올라 2002년이 정점을 이루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땅히 정책금리는 계속 더 올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신용카드 사태와 이로 인한 금융혼란, 경기침체였다. IMF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1999년부터 신용카드의 보급을 적극 권장하였다. 많은 업소와 자영업자들이 거래와 소득을 숨겨 조세와 사회보험료 등을 탈루하고 있어서 신용카드 사용으로 이를 양성화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소비증대를 통해 경기부양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선 신용카드가 무차별 남발된 것이다. 카드를 길거리에서도 팔고 신용조사 없이 각종 경품을 주어가면서까지 발급하였다. 그 결과 카드 발행은 1999년에 3,900만 장이던 것이 3년 뒤에는 1억500만 장으로 크게 늘고 이에 따라 가계부채는 급증하여 신용불량자가 줄을 잇고 카드 연체가 누적되었다.

더 큰 문제는 카드 현금서비스였다. 신용카드회사는 본업인 결제 서비스 업무보다 연리 14%-25%의 고리 현금대출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런데 현금대출의 부실이 계속 커져 연체율이 2001년의 3%에서 2년 뒤에는 14%까지 올라 카드 회사들이 도산위험을 맞게 되었다. 카드 회사들은 현금대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02년만 하더라도 90조원이라는 엄청난 카드회사채를 발행하였는데 이것은 투자신탁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기관이 사간 것이다. 그런데 카드 회사채의 부도위험이 커짐에 따라 금융시장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다.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인한 신용불량자 문제는 큰 경제문제인 동시에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 2003년에는 경기침체가 깊어져 경제성장률이 2.8%에 그친 반면 주가는 10% 떨어지고 서울의 집값 오름세는 10%로 꺾이게 되었다. 이때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4.5-5.0%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2.8%라는 성장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편에서는 집값 상승이 있고 다른 편에서는 금융시장 대혼란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딜레마에서 나는 부동산 안정을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릴 수는 없었다. 중앙은행이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동산은 금융시장 안정이나 경기침체에 비해서는 국부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경기침체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 2003년 5월에 금리를 4.0%로 더 내리고 그 후 2004년 11월 3.25%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더 내린 바 있다.

이때 이러한 금리 결정의 딜레마에서 최선의 정책선택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부양을 주로 떠맡고 부동산 시장은 조세정책과 주택대출규제 등 행정규제를 통해 정부가 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이런 방향으로 대응했지만 부동산 가격을 잡기에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카드채 문제가 마무리되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경제성장도 4.5%내외로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반면 2005년의 서울 집값은 전년의 1%하락에서 9%상승으로 반전하였고 주가는 29%나 올라 금리인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10월부터 금리를 다시 올리기 시작하여 4%에서 임기를 마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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