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모기들로 득시글대는 언덕 위 작은 텐트에서 한 남자가 나온다. 더럽혀진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잠시 눈 앞에 펼쳐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바라보다 이내 다닥다닥 붙어있는 텐트 틈을 비집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핀다. 식품과 의약품을 나르는 것은 하루 일과다. 최근에는 다가오는 우기에 대비해 삽으로 물길을 내거나 플라스틱 판으로 빗물 차단벽을 세우는 데 열중해 있다.
영화 ‘미스틱 리버’, ‘아이 앰 샘’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숀 펜(사진)이 바로 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1일 “숀 펜이 하고 있는 봉사야말로 진정으로 아이티를 돕는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펜은 지난 1월 아이티 대지진 이후 줄곧 이곳에 머무르며 난민들을 돕고 있다. 펜은 지진 발생 전 아이티 부유층이 애용했던 골프 코스를 개조해 직접 텐트 캠프를 세워 5만명을 수용할 정도로 키웠다. ‘텐트시티’라 불리는 이곳은 아이티 곳곳에 산재한 텐트촌 중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어떤 텐트촌보다 학교, 병원, 화장실, 식수대 등 필수 시설이 많은데다 정기적으로 경찰이 순찰을 돌아 안전하다. 인디펜던트는 “1,300여 텐트촌 중 펜이 세운 텐트시티가 가장 안전하고 정돈된 곳”이라고 전했다.
펜의 꾸준한 봉사는 점점 관심이 적어지면서 아이티 피해지역 대부분에서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극명히 대비되고 있다.
아이티 대지진 이후 국제사회가 내놓은 지원금 규모는 11억달러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단지 2%만이 구호활동에 투입됐다. 지원금이 전달되지 않아 재건사업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구호대 대부분이 에어컨이 달린 임시숙소를 마련하는 데 수천달러를 지불하고 잠시 활동하다 돌아가지만, 펜은 작은 텐트에서 난민들과 수개월째 함께 생활하면서 텐트시티를 일궈냈다.
그가 지진 이후 이곳을 떠난 적은 아이티 지진 구호 자금 모금 활동을 위해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했을 때뿐이다. 동료 알리스테어 램은 “함께 생활하면서 난민들을 이해해야 제대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펜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이곳 난민들에게 그는 동경하는 영화배우가 아닌 ‘캠프 펜’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인물이 됐다. 펜은 “아이티에서 죽음보다 생존이 더 많을 때까지, 그리고 아이티가 나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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