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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2부> 커지는 빈부차, 멀어지는 사회통합 (1) 돈 보다 희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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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2부> 커지는 빈부차, 멀어지는 사회통합 (1) 돈 보다 희망을 잃었다

입력
2010.07.1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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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기 성공은 딴나라 얘기"… 남은 건 가족해체와 1평짜리 쪽방

"이 나라는 나 같은 사람에게 단 한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지. 10년이 넘도록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늘어가는 건 빚 뿐이었어."

지난 9일 서울 명동 신용회복위원회 6층 상담실. 김경한(60ㆍ가명)씨는 지난 12년간 재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곳을 찾게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30년 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숙녀복 전문 의류 가게를 열고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아내와 함께 하루 12시간을 꼬박 장사에 매달리며 5년 만에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고,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던 자가용까지 몰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김씨는"그 때는 배운 것 없어도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믿음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무너졌다. 대기업과 은행이 쓰러지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의 가게도 내리막을 걸었다. 거래처로부터 받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됐고, 의류제조사들로부터 밀려드는 대금 상환 요구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김씨는"15년간 피땀 흘려 벌어 놓은 현금을 3개월 만에 빚 갚는데 다 썼다"고 말했다.

1999년 김씨는 결국 아파트를 팔았다. 5,000만원으로 아내와 함께 다시 동대문시장에서 재기의 꿈을 다졌다. 하지만 동대문시장은 더 이상 옛날의 그 곳이 아니었다.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옷 가게를 차리면서 과당경쟁이 벌어졌고, 김씨의 노력은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물거품이 됐다.

그로부터 3년 후. 정부가 지원하는 소상공인 자금(1,000만원)에 카드 현금서비스(2,000만원)까지 더해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1년 후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빚더미에 올라 앉고 김 씨는 신용불량자(현재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김씨는"빚을 줄여보려고 징역(6개월)을 살기도 하고 자살까지 시도해 봤다"며 "정부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정작 내 빚은 줄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는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마저 끊어지면서 지금은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 아내와 자녀들도 그의 곁을 떠났다. 직업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그는 가정도 잃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한 번의 위기를 거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그만큼씩 벌어졌다. 외환위기 때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카드사태는 빚더미에 앉았던 이들의 파산으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계선상에 있던 가계와 자영업자의 몰락으로.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위기 극복의 과실은 부유층에게 돌아갔고, 패자부활의 기회는 꽁꽁 막혔다. 신용회복 프로그램이나 미소금융 등 각종 재활 제도가 만들어졌다지만, 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까치 발을 들고 서 있는 이들의 목숨만 구제해줄 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기엔 너무 미흡했다.

홀로 남은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 한 달에 번 돈은 78만원 가량. 남부럽지 않던 동대문시장 사장님이 돈과 가정을 잃고 월 78만원짜리 택시기사가 되는데는 10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한달 23만원짜리 1평이 채 안 되는 독서실 방에서 소주 없이는 잠을 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바람은 단 한가지. 자신에게 남은 빚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빚을 대물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 때문에 자식들이 채무불이행자가 돼 취직도 못하고 있어. 죽기 전에 빚 다 갚아서 그 놈들 구제하는 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지, 뭐."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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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점에 다다른 88만원 세대의 비애

지난해 1월 한 방송 교양프로그램 외주제작사에 조연출로 입사했던 김민성(29ㆍ가명)씨는 두 달 만에 중도 하차했다. 2006년부터 응시한 방송사 프로듀서(PD)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자 비정규직이지만 경력을 쌓아 방송사로 옮길 요량이었다.

김씨가 외주제작사에서 월급으로 받은 돈은 80만원. 일주일에 사나흘씩 밤샘 작업을 했지만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씨의 몸무게는 두 달 만에 5kg이나 빠졌다. 김씨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직업인으로서의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6개월이나 지났지만 그는 다시 취업 준비 중. 그저 남의 얘기인줄로만 여겼던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김씨처럼 많은 20대 들이 지금 생계를 위해 비정규직의 쳇바퀴에 올라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봐야 숨만 더욱 헐떡일 뿐, 쳇바퀴를 벗어날 방법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3월 현재 30세 미만 임금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52.1%가 비정규직. 청년실업의 덫에서 벗어난들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의 늪에서 허덕인다는 얘기다.

2004년 전문대를 졸업한 최선경(27ㆍ가명)씨는 레스토랑 서빙, 전화 상담원 등 7년째 비정규직으로만 일해왔다. 회사가 재계약을 거부한 곳도 있지만 최씨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곳이 더 많았다. 최씨가 2007년부터 일한 신용카드 고객 상담센터에서는 근무 내용을 모두 점수화해 점수가 낮으면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하루 동안 받은 상담 전화 수, 근무 태도 등이 모두 점수화되다 보니 전화를 한 통이라도 더 받기 위해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우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눈치를 봐야 했다. 최씨의 입사 동기 30명 중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는 동기는 단 2명뿐. 최씨는 5월부터 경기도의 한 피부관리실에서 월 80만원을 받으며 피부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해 온 이주연(28ㆍ가명)씨는 내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일자리를 찾으면 아예 정착할 생각이다. "호주에도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많지는 않겠죠. 그래도 희망 없는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가느니 다양한 경험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의 절규에 가까웠다.

남보라기자

■ 정규직 대비 임금비율 46.2%/ "처우 개선없이 임시직 많아야 뭔 소용"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제1해법은 역시 일자리 창출이다. 성장을 통한 파이 확대가 먼저인지, 복지 지출을 늘려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인지는 여전한 논란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결국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고용창출이 가장 기본"이라며 "고용 없는 성장 고착화, 위기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과 자영업 붕괴 등으로 인한 고용 악화가 소득 양극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희망근로 프로젝트나 청년인턴제 같은 한시적 일자리 대책은 한계가 명백하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봉책으로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을지언정, 일자리의 양에만 치중해서는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일자리 수가 40만~50만개 급증하고 있다지만, 서민들의 체감 고용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 이유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은 일자리 간 양극화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3월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임금 비율은 46.2%. 비정규직의 소득이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2000년8월 53.5%를 기록한 이후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 비정규직 분류 기준의 차이로 정부 공식 통계(54.7%)와도 상당한 격차가 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도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겉돌 수 있다는 점. 서비스산업 등 신성장동력 육성, 사회적 일자리 확충 등 정부도 다각도의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요란만 할 뿐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없으면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없는 만큼 일자리 창출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며 "세제 등 각종 정책을 고용친화적으로 바꾸는 등 성장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 일자리·부동산·사교육 따라 '빈부 쌍곡선' 발버둥쳐봐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

10여년 전, 혹독했던 환란 구조조정 한파에 휩쓸려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강성훈(53ㆍ가명)씨. 이미 중간정산을 받았던 터라 손에 쥔 퇴직금은 1,50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막막했다. 집 한 채 없이 두 자녀를 키워야 되는 절박한 처지에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인 소개로 한 부품 중소기업에 들어갔지만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금세 옷을 벗어야 했고, 아동용 서적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가 3년을 넘기지 못한 채 접고 말았다. 다시 절치부심. 4년 전, 대출까지 받아 아내와 함께 자동차용품점을 열었다. 처음엔 자리를 잡나 싶더니, 최근 불황 여파에 월세와 대출이자 내기도 급급한 처지다. *관련시리즈 5면

강 씨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돈도, 직업도, 그리고 희망까지 모두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애를 태우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 중하위권인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그래도 애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썩 잘했다"며 "제대로 된 과외를 못 시켰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자책했다. 그는 이렇게 가난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우리 사회 부자와 서민들의 격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만큼이나 극명하다. 분배를 앞세웠던 참여정부도,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현 정부도 빈부 격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고, '소득의 양극화'는 곧 '기회의 양극화'로 전이돼 일단 하위층으로 전락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상류층 대열에 합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소득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ㆍ2003년 0.270 →0.294), 소득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의 하위 20% 소득 배율ㆍ4.24배 → 4.94배), 상대적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가구의 비율ㆍ10.6% →13.1%) 등 소득분배지표는 모두 악화일로다.

소득을 지렛대 삼은 자산의 양극화는 더 극심하다. 100억대 자산가인 조명희(63ㆍ가명)씨는 "지난 10여년 사이 아파트나 토지, 상가에 투자한 돈이 대부분 몇 배 이상으로 불었다"고 말했다. 고금리나 부동산가격 폭등처럼 서민들에게 고통스런 환경일수록, 부자들에겐 오히려 자산증식의 기회가 된 것이다.

빈부격차의 3대 주범은 ▦일자리 ▦부동산 ▦사교육이다. 소득의 양극화를 찾아 들어가면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문제로 나눠진다. 이런 소득의 양극화에 더해 뿌리 깊은 투기심리와 부동산가격의 폭등은 유주택자(특히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간의 자산 양극화를 확대시킨다. 그리고 사교육을 통해, 자식세대들까지 고스란히 대물림 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 양극화 해소, 집은 소비재라는 인식 확산을 통한 자산 양극화 해소, 그리고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부의 대물림 방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굳어진 빈부의 양극화 구조 하에서 부자는 서민들에게 선망이 아닌, 증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양극화 해소 없이 사회통합도 불가능한 이유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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