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소설의 귀환인가. 한국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작가의 비판적 발언을 강화하는 소설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08년 촛불집회, 지난해 용산참사를 거치며 작가들의 시국 발언과 참여가 부쩍 늘고, 문단에서 '문학의 정치성'을 주제로 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씨는 "용산참사, 4대강 개발 등을 접하면서 작가들이 개발에 치우친 비인간적 근대화가 임계점에 도달했고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소설 창작이 늘고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조정래(67)씨가 계간 '문학의문학' 여름호에 전반부를 발표한 장편 '허수아비춤'은 돈을 무기로 권력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가는 재벌의 행태를 묘파하고 있다. 소설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일광그룹 회장이 '문화개척센터'라는 기묘한 이름의 친위조직을 만들고 이곳을 통해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의 고위급 공무원을 거액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최근 한 검사 출신 변호사가 폭로한 대기업의 비리 행위가 절로 떠오르는 내용이다.
황석영(67)씨가 최근 출간한 장편 도 작가 스스로 '후반기 문학'으로 일컫는 자신의 2000년대 이후 발표작 가운데 가장 현실에 밀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해방기부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까지의 '강남 형성사'를 추적하며 부와 권력의 왜곡된 분배의 연원을 파헤친 소설이다. 황씨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욕망과 좌절, 사회 문제를 낳은 상처의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썼다"며 "나는 요즘 약간 왼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비단 이들 중진 작가들뿐만이 아니다. 황정은(34)씨가 최근 발표한 장편 는재개발로 인해 단계적 철거에 들어간 서울 세운상가를 연상시키는 전자상가가 무대다. 이 소설은 상가의 완전 철거를 기정사실로 여기며 여전히 이곳에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세간의 무관심이, 상인들에게 어떻게 고통을 가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황씨의 말은 이 소설의 독법을 제시해준다.
주원규(35)씨의 신작 장편 는 작가 스스로 사회소설을 표방한 작품이다. 작품 무대인 138층짜리 건물은 신분상승 경쟁으로 점철된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를 집약해 보여주는 가상 공간이고, 주인공인 소년과 칼잡이는 무력감과 사악함이 공존하는 우리의 내면을 상징한다. 주씨는 "젊은 IMF 세대에게 현대사를 보는 비판적 안목과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와 노숙 생활을 하다가 미혼모가 된 소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리모가 된 여대생 등 비참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이설(35)씨의 소설집 역시 사회소설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최서해를 비롯한 1920년대 신경향파 작가들처럼, 김이설 황정은 김사과 등 '21세기 신경향파' 작가들은 출구 없는 빈곤과 폭력을 지속적으로 소설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비참한 진실을 무자비하게 폭로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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