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으로 새로운'을 뜻하는 '혁신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혁신적이라 불리는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게 마련인데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 보인다. 이미 예상되던 발전을 혁명적이라고 부르진 않으니까.
그렇다고 이 단어가 꼭 갑작스러움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한때는 어느 사람 마음속의 꿈에 불과하던, 가능성 검토나 실행계획이 전혀 없던 막연한 꿈이, 오랜 준비와 노력을 거치면서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세상을 바꾸게 되는 것일 테니까.
대단히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 꿈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소통할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역량을 가진 지도자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회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리더십의 증빙으로 네 가지를 들곤 한다. 아이튠즈를 만들어서 음악산업을 바꾸어 놓았고, 픽사를 만들어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으며, 아이폰으로 휴대전화산업의 지형을 바꾸었고, 아이패드로 컴퓨터산업을 바꾸어 놓으려는 중이라는 것이다. 경영인의 성공은, 때를 잘 타거나 능력 있는 부하직원의 덕을 보는 등의 행운에 의한 경우도 많지만, 네 가지의 혁신을 만들어내서 각 해당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일을 이런 행운의 결과로 보기는 힘들다.
잡스가 애플 회장으로 복귀하던 1997년도에만 해도 애플사는 파산 직전으로 간주되던 처지였다. 이런 애플이 주가총액 300조원의 세계 1위 기술회사로 올라섰으니, 한 명의 지도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의 폭은 범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렇지만 혁신과 파급효과만을 보지 말고, 이를 위해 필요했던 긴 세월의 준비와 시행착오도 볼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로서의 아이폰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손이나 펜으로 입력하는 휴대전화는 팜, HP 등에서 부지기수로 출시했었으니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출발은 1980년대 말에 애플 내에서 시작되었던 뉴튼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태블릿 컴퓨터였던 뉴튼 기기들은 90년대에 여럿 출시되었지만 별 호응을 못 받고 단종된 바 있다. 애플은 몇 해 전에 이 뉴튼 태블릿을 새로운 관점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잡스의 지시에 따라 크기를 줄여 아이폰으로 먼저 출시했고, 원래 목표였던 태블릿은 최근에 아이패드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애플의 또 다른 준비는, 소비자가 유료로 음악 파일을 구매하지 않을 거라고 모든 이들이 말하던 시절에, 아이툰즈를 만들었던 경험이다. 공짜 다운로드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불평 없이 음악파일을 구매하게 되면서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이는 아이팟의 성공을 견인했다. 잡스는 같은 개념인 앱스토어를 아이폰에 도입하며 엄청난 수의 개인개발자가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이폰의 활용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되었고, 뒤따른 성공은 텔레콤산업을 흔들 지경이 되었다.
애플은 뉴튼 태블릿 개발의 20년 경험과 아이튠즈라는 유료콘텐츠 시장 구축의 경험을 통하여 사전 준비를 마치고, 그 융합으로 아이폰이라는 혁신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는 문화적 충격의 수준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역량을 엄정히 평가하고 이러한 자산을 최적으로 결합할 때, 그리고 그것을 세상과 소통할 때, '혁명적으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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