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각종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여권 내 비선(秘線)조직의 인사개입 의혹을 제기해 온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자신에 대한 한나라당 일각의 공격에 대해 "KB건 곱하기 100건 정도 더 있다. 전당대회 경선에서 떨어지면 비망록을 쓸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권력 실세가 주축이 된 비선조직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공ㆍ사기업 인사에 개입해왔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중도 사퇴한 것도 선진국민연대 출신 청와대 인사들이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전 이사장도 당시 '퇴임의 변'을 통해 "진ㆍ간접적 사퇴 압력을 많이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이 단체 간부 250여명을 부른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 못 하겠다"고 한 얘기가 전해질 정도이니, 이들이 정부 부처나 공기업에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알 수 있다. KB금융,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등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한 정황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여권 내부의 파워게임이 아니다. 권력을 등에 업은 사조직이 정부 부처와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 인사에까지 개입해 국정 질서를 허물어뜨린 데 있다. 정 의원도 "국정농단 사안 자체는 권력투쟁으로 몰아 본질을 흐릴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 의원은 나중에 비망록을 쓸게 아니라, 당장 인사 개입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고 변죽만 울린다면 인사라인에서 소외된 데 따른 불만 토로일 뿐이라는 반대 측의 주장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의혹의 핵심 인물은 모두 측근 실세들이다. 이들이 독자적으로 인사를 휘둘러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은 여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 정권의 환부를 도려내기 바란다. 비선조직을 방치한 상태에서 청와대와 내각을 일신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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