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6ㆍ25전쟁 60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가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 런던 중심부 트라팔가 광장 옆에 자리한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17일까지 이어지는 '과거로부터 온 선물(Present from the Past)'전이다.
김기라, 이이남, 세오, 이용백 등 한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 40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파괴와 창조' '잊혀진 전쟁' '잊혀지지 않은 사람들' '나의 한국, 불안과 평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만남'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이뤄졌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주제로 삼았지만, 전시장은 어둡거나 무겁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감돈다. 흑백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만 6ㆍ25전쟁을 기억하던 런던 현지인과 관광객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재해석된 전쟁의 이미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시장 초입에는 '이 나라는 정말로 나의 일부입니다' 라는 영국 참전용사의 말이 적혀있고, 그 아래 태극기와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하나로 결합시킨 권경환씨의 작품 '깃발'이 걸렸다. 흰색,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으로 칠한 캔버스를 가늘게 자른 뒤 그것을 다시 엮어 만든 이 작품은 상처와 치유를 동시에 암시한다.
이상엽씨의 사진 'DMZ 숲'은 사슴이 평화롭게 물을 먹고 있는, 지상낙원의 모습이다. DMZ에 서식하는 쥐방울덩굴을 화면 가득 확대해서 그린 허산씨의 '쥐방울덩굴'은 마치 하트처럼 보이고, 박종우씨의 사진에 담긴 뾰족한 철조망은 자라나는 풀을 연상시킨다. 모두 분단의 상징적 공간 속에서 읽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차츰 시간 속으로 잊혀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작품을 통해 되살아난다. 김기라씨는 누군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석고상을 그린 뒤 화려한 금색 액자로 감싸고는 '영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창원씨의 사진 '기억'은 6ㆍ25전쟁 당시 전우들과 함께 찍었던 기념사진을 바라보는 외국인 참전용사의 그림자를 아련하게 담아낸 것이다. 나현씨는 6ㆍ25전쟁 때 실종된 외국 군인의 프로필을 흐릿하게 보여준다.
영국 가디언지가 북한에 대해 쓴 기사에서 모티프를 얻은 김아영씨의 사진은 금세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집들과 미사일, 선전 문구 등을 합성해 북한을 바라보는 서구 사회의 시선을 풍자한다. 한국의 곳곳에 놓인 6ㆍ25 기념상들을 모아놓은 난다의 사진에서는 과거의 전쟁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 전시는 BBC 월드뉴스에 소개되는 등 현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국은 6ㆍ25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만8,000여명의 군인을 참전시킨 나라로, 그 중 3,500여명이 생존해있다. 주영 한국문화원은 전시 출품작 이미지로 제작한 엽서 세트를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전시 작품을 소더비 경매에 부쳐 수익금 전액을 영국참전용사기금에 기부할 예정이다.
런던=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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