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최대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부당하게 정부나 공기업의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현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 역대 정권들도 대선 사조직의 폐해로 인해 곤란을 겪었다. 노태우정부의 월계수회, 김영삼정부의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 김대중정부의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 노무현정부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이 대표적 사례다.
월계수회는 노태우정부 탄생의 1등 공신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의원이 1987년 6·29 선언 직후 반드시 대선에서 승리해 월계관을 쓰자는 의미에서 월계수회를 만들었다. 회원은 200만명에 육박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집권 이후 박 전 의원은 6공의 황태자로 불렸다. 월계수회는 소속 국회의원도 60명을 넘으면서 여당 내 최대 계파로 떠올랐지만 인사와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계속 받았다. 월계수회는 1992년 박 전 의원과 대립관계에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주산악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규제로 묶여 있던 81년에 정치활동과 등산 등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형우 전 의원 등이 주도했으며 92년 대선 당시 회원수가 150만명에 육박했다. 민주산악회는 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85년 12대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는 데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소속 인사들의 낙하산 인사로 정부기관 요직을 대거 차지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나사본은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와 고 서석재 전 의원이 주도한 외곽조직으로 92년 대선 직전에 조직됐다. 하지만 현철씨가 정권 말기인 97년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97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사조직은 '연청'이란 청년 조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80년에 결성했고, 평민당과 국민회의 외곽 정치세력으로 활용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2000년 연청 간부 560여명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연청은 같은 해 민주당 공식 조직으로 편입됐지만 연청에 소속된 주요 인사들이 공공기관장 등에 대거 진출하고 인사청탁 혐의 등도 받으면서 야당의 공격 대상이 됐다.
노사모는 자발적 팬클럽 모임이라는 점에서 과거 정권의 사조직들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노사모가 노무현정부 창출에 큰 역할을 했으나 실제 국정운영이나 공공기관 인사를 주도한 인사들은 386세력이나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들이었다. 배우 명계남씨 등 초기 주축 세력이 국민참여연대를 결성해 열린우리당 접수에 나서면서 노사모의 성격도 변화했다. 사실상 노사모의 회원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강원지사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국정이나 인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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