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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넘긴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자생적 통일운동의 터전 지켜내 너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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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넘긴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자생적 통일운동의 터전 지켜내 너무 다행"

입력
2010.07.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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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와 군사정권에 대한 항거, 통일운동으로 수 차례 옥고를 치르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1989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터전을 잡은 백기완(77) 통일문제연구소장. 그의 보금자리는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될 뻔했다. 다행히 9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 덕에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날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헝클어진 머리에 흰색 저고리와 바지, 고음은 아니지만 쇠 긁는 소리 비슷하게 귀에 박히는 목소리까지 그는 여전했다.

저간의 사정부터 살폈다.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이날 통일문제연구소 건물 소유자 이모씨 등 20명이 서울 종로구청장을 상대로 낸 재개발조합 설립인가 취소청구소송에서 이씨 등이 승소한 2심을 확정했다. 종로구 명륜동4구역(1만㎡)에 156세대 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통일문제연구소가 철거상황에 놓이자 시작된 행정소송이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안도감에 젖은 백 소장은 건물의 의미부터 되짚었다. "1988년 봄에 '통일마당집 한돌 쌓기'를 시작했어요. 한돌에 500원씩 100만돌을 쌓는 게 목표였는데, 당시 5억원이면 대학로에 200평 정도 땅 사고 건물 지을 돈이 됐거든. 그간 맨날 감옥 들락날락해서 돈은 없는데 통일운동은 해야 하겠고 어떡하겠어. 벽돌장사라도 해야지 허허."

그는 통일문제연구소 건립뿐 아니라 20년 운영하면서 정부와 재벌의 도움을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당시에 1억원 조금 못 모았어. 내가 고문후유증으로 15년간 14번을 입원하면서 강연을 생각보다 많이 못했거든. 강연을 잘 못하다 보니 모금활동도 그랬던 거지. 그 돈이랑 내 강연료까지 모두 털어 건물을 지은 거야."

백 소장은 2008년 동네 재개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통일문제연구소 건물은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자생적인 통일운동의 터전이 그리 쉽게 개발논리에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개발사업은 계속 진행됐다. 백씨와 일부 주민들이 급한 마음에 같은 해 소송을 시작했지만 1심에서 패했다.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 한 분이 무료로 2심을 맡아줬어. 정말 내 일처럼 잘 해줘서 지난해 이긴 거지. 그리고 이번에 최종 판결이 난 거야."

한 고비를 넘기니 문화원을 짓고 싶다는 계획도 생겼다. 지금의 연구소는 너무 협소해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기에 힘든 만큼 진정한 소통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화원도 시민성금으로 건립하려고 해요. 또 벽돌장사를 해야 하는데 예전처럼 500원은 너무 적은 거 아닌가. 한 5,000원쯤 생각하고 있어, 허허…. 그래서 요즘 나도 좀 더 멋진 강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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