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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이재킹 아메리카'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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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이재킹 아메리카'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은 바뀌지 않는다

입력
2010.07.0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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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조지 지음ㆍ김용규 등 옮김/산지니 발행ㆍ356쪽ㆍ1만8,000원

미국을 공중납치하기? 제목이 자극적이다. 무슨 뜻인가? 누가 그랬단 말인가? 어떻게?

이 책이 규탄하는 공중납치범은 미국의 우파다. 세속적ㆍ종교적 우파가 레이건 대통령에서 부시 대통령까지 30년간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이데올로기를 조작해왔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8년 대선 직전에 나온 책이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좀더 진보적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저자는 일찌감치 접었다.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가 틀렸기를 바라지만, 미국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미국적 가치가 단 몇십년 만에 진창에 빠졌다고 선언한다. 왜 그리 되었는지 밝히기 위해 쓴 책이다.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자들이 세속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 양쪽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형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집중 조명한다. 네오콘으로 알려진 미국 정치의 우파들이 얼마나 위험한 집단인지 고발하는 책은 많았다. 이런 책들은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오바마가 당선됐다. 공화당이 지고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기엔 미국 문화의 신보수화 경향이 너무 깊이 뿌리박혔다는 것이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최근 가자지구로 가던 국제구호선을 공격한 이스라엘의 행동을 국가테러라고 다들 규탄할 때, 미국 상원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저자는 미국의 우경화가 수십 년에 걸쳐 아주 집요하고 치밀하게 진행됐다고 말한다. 이 은밀한 이데올로기 공작의 주역은 세속적으로는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우파들이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자금, 미디어, 마케팅, 경영, 사명감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진을 계속해왔고, 마침내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하이재킹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우파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재단을 만들고, 두뇌집단을 지원하고, 그렇게 키운 자신들의 사람을 언론과 대학, 정부에 심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파의 재단과 사람들, 그들의 계보와 그들이 한 일을 낱낱이 추적해 밝히고 있다. '문명충돌론'으로 잘 알려진 새뮤얼 헌팅턴도 그런 보수재단의 기금 수령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종교적 우파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교회 등 종교적 대리자가 정부를 대신해 통치하는 신정정치를 주장한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고,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며, 홈스쿨링 운동을 통해 창조론을 가르친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휴거를 기다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광신도 집단에 머물지 않고, 미국 개신교 전체를 우경화로 이끄는 한편 현실 정치세력과 결합해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광신도라고 조롱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61%가 성서에 쓰인 대로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세상에 이 무슨 터무니없는 맹신이냐 싶지만 그게 미국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우파가 수십 년 공들여 생산하고 퍼뜨린 이데올로기의 성과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종교적 우파와 세속적 우파의 동맹을 보여주는 본보기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해서 독실한 신자가 됐다는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이다. 그가 재임 시절 펼친 정책들은 이 위험한 동맹이 권력을 장악해서 돌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

저자 수전 조지는 제3세계의 빈곤, 개발, 부채 문제 등에 관한 저술과 사회적 실천에 힘써온 지식인이다.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 시민권을 갖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그는 미국의 우경화 경향을 경고하는 이 책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표현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진보 세력이여 단결하라. 당신의 문화적 속박을 제외하고 당신이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적들이 그만큼 강고하다는 경고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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