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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화계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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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화계 '공공의 적'

입력
2010.07.0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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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씨가 심상치 않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교차하는 이런 날씨는 사람들에게 불편과 불안감을 준다. 합리적 판단력, 마음의 여유, 효율성은 하강곡선을 그린다.

요즘 영화계 기상도 여름 날씨와 너무 닮아 맥이 빠지고 우울하다. 현장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감은 사라진 채 목소리 큰 사람들끼리 막무가내로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정작 시급한 현안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해결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

예산 지원 둘러싼 깊은 불신

현재 거친 대립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독립영화계다. 강한섭 전 위원장이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저 점수를 받고 중도 퇴진하는 불상사를 이미 겪었건만, 조희문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주요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 일로로 치달아 낯뜨거운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언론에 충분히 보도된 사례들을 새삼스레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계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이런 갈등의 악순환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영진위의 내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의 세부내용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올해 배정됐던 독립영화 제작지원(7억 원), 예술영화 제작지원(32억 5,000만원), 기획개발 역량강화(12억 6,000만원) 예산을 삭감할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계 지원방식이 다른 문화예술계처럼 직접 지원보다 간접지원과 인프라구축 지원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며, 영화제작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늘어난 50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나눠 먹기, 편파 심사 시비가 집중됐던 직접지원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뜻도 반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립영화계는 이런 변화가 영진위와 대립각을 세웠던 자신들에게 경제적으로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다양성 영화사업 부문에서는 독립영화 관람료 지원항목이 신설돼 3억 5,000만 원이 책정돼 있으나, 이마저 코드가 맞는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한다.

양측과 맹목적으로 동고동락할 이해관계나 사생결단할 만한 원한도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충돌의 근원은 제도 자체보다는 오랜 기간 꼬여왔던 '관계들'의 어긋남에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서로에 대한 심각한 피해의식과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심화된 불신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 위원장 시절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일련의 소요는 사안별로 떼어놓고 보면 편파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이렇듯 단순 명쾌한 인과관계가 다른 한쪽에서는'자의적 편리함'으로 해석된다.

과거 정권 시절에도 영화계의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이견, 소수의견은 간단히 묵살당했고, 각종 심사나 행사에서도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했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했다며 상대를 무릎 꿇려야만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니 이런 악순환이 다시 없다. 그러니 지금 직접 지원이 좋으냐 간접 지원이 좋으냐 논쟁하는 것은 별 소득은 없이 또 다른 싸움거리만 만들 공산이 크다.

다양성과 상호 존중의 지혜를

그러면 이처럼 복합적인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일찍이 현자들이 지혜를 알려 준 바 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영화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본 전제를 생각해보자. 바로 다양성의 보장이다. 다른 세계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간의 상호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나 관점이 다르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영화계가 힘을 모아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악순환의 고리는 의외로 쉽게 끊길지 모른다.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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