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을 불 지피고 다시 열흘을 식힌 가마가 드디어 열렸다. 어둠 속 1,000년의 비색을 온몸에 두른 고려청자들이 세상 밖으로 갓 나왔다. 고려청자 재현에 성공(한국일보 5월 1일자 11면)한 지 석 달 만에 전문가와 일반인을 상대로 전 과정을 재연한 현장이다.
7일 오후 4시께 경북 경주시 건천읍 해겸요. 김해익(56) 도예장은 지난달 27일 입구 온도 1,510도에서 진흙으로 봉했던 통가마의 배를 텄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 청자상감운학문합 청자상감항아리 등 100여점이 불길을 견디고 모습을 드러냈다.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내린 입구 쪽 작품을 걷어 내고 도자기를 하나씩 꺼낼 때마다 도자기 전문가와 애호가, 취재진 등 40여명은 탄성을 내질렀다.
김 도예장은 4월 초 이미 기존 도예 교과서의 상식을 깨뜨렸다. 당시 원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한 가마 안 온도는 2,013도였다. 이번에는 비록 500도 낮게 측정됐으나 철이 녹는 1,530도까지 육박해 도자기를 굽는 온도가 1,250∼1,300도라는 공식을 다시 한번 허물어 버렸다.
이날 재연으로 고려청자는 앞으로 계속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어쩌다 한 번 운 좋게 만든 청자가 아닌 것이다. 재연 과정을 지켜본 세라믹연구 권위자 백우현(67) 경상대 명예교수는 "김 도예장이 피움불 중불 흰불 붉불 녹임불 등 다섯 단계의 불 기술로 열흘 이상 불을 다룬 것이 고려청자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도예장은 대대로 통가마를 고집한 도공 집안 출신이다. 대부분 도예가들이 흙이나 유약이 청자의 비결이라고 매달렸을 때도 그는 "불이 전부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새기며 40여년을 불 공부에 바쳤다.
서울에서 온 유미영씨(40ㆍ여)씨는 "고려청자의 비색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며 청자를 일일이 껴안으며 기뻐했다.
김 도예장은 고려청자 재현 방식에 대한 국제특허를 추진하는 한편, 9월에도 고려청자 재현의 전 과정을 공개할 계획이다.
경주=김윤곤 기자 msyu@hk.co.kr
은윤수 기자 newse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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