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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1부> (4) 심각해지는 사업영역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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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1부> (4) 심각해지는 사업영역 침해

입력
2010.07.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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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 만한 中企영역까지 숟가락 얹기, 밥줄 끊길 판"

7일 서울 충무로 인쇄거리의 A업체. 좁은 공간에서 8명 직원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는 가운데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사장 차모(53)씨는 "기계를 2대 돌리다 지난달 1대를 팔았다"며 "갈수록 상황이 어려워져 도저히 2대를 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차씨는 "인쇄기계가 갈수록 좋아지다 보니 주문 물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며 "인쇄료는 10년 전이나 별로 큰 차이는 없는데 어찌 해야 할 지 인쇄업자들이 살 궁리하느라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차씨는 이어 "중소업체들도 없는 물량에 전쟁을 하고 있는데 모 대기업이 인쇄 사업을 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저 1대 있는 기계도 언제까지 돌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에 대한 대기업의 침투는 갈수록 빠르고 전방위로 늘어가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새 회사를 차리거나 관련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시장 개척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모를 키워놓은 분야를 집중 공략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재벌닷컴이 민영화 된 공기업을 제외한 30대 그룹의 계열사 변동 현황을 조사한 결과, 3월 말 현재 계열사 수는 총 980개로 2005년에 비해 43.9%, 299개나 늘어났다. 특히 2008년 이후 2년 동안 190개가 늘어 전체의 63.5%를 차지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공정거래법 등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대기업들이 인수ㆍ합병과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해 사세 확장에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소기업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대기업들은 대놓고 숟가락을 얹고 있다. L사는 2008년 4월 일본 히타치와 손잡고 정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웅진코웨이ㆍ청호나이스ㆍ교원 등 3사가 75%를 점유하고 나머지 시장을 군소 중소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L사가 주력하겠다고 밝힌 분야는 전체 정수기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알칼리 이온수기 시장으로 주로 소규모 업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 정수기업체 관계자는 "50명 규모의 신 사업 개발팀을 꾸려 연구한 결과가 일본 회사와 손 잡고 중소기업이 키워놓은 국내 시장에 역진출하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대ㆍ중소기업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의 경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라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돼 있지만 통합발주와 예외 조항 등을 교묘히 이용해 대기업이 시장을 야금야금 빼앗아 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발주하는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은 자료의 반입ㆍ출과 스캔 등 단순 작업인 데도 대기업이 너나없이 뛰어들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인력 유출도 상당하지만 소문 날까 끙끙 앓고만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대기업들이 진입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재생타이어 시장도 그 중 하나. 지난해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등 타이어 업계의 빅2가 재생타이어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히면서 기존 중소업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시장 규모가 1년에 600억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40개 이상의 중소업체들이 평균 1억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겨우 버티고 있다"며 "더구나 재생타이어의 재료를 대기업들이 대리점을 통해 싹쓸이를 해 버리면 중소업체들은 꼼짝없이 문을 닫을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뿐만 아니라 웨딩사업, 와인유통업, 휴대전화 결제, 레미콘 등도 최근 대기업들이 집중 공략하는 분야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기존 사업의 성장 정체 때문이거나 경기 침체기에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가리지 않고 영역을 확대하려는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기술 개발보다 중소기업들이 형성해 놓은 시장에 무임승차하거나 손쉬운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기댈 곳은 사업조정제도가 유일하다. 이 제도는 2006년 12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가 폐지된 이후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들어 경영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것이다.

체격과 체력이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유 경쟁을 벌일 경우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사업 영역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자율 조정에 실패하면 대기업에 사업 진출을 늦추거나 생산(판매) 품목ㆍ수량 등을 줄이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은 없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刻?중소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김윤경 인턴기자

■ 고유업종제도 폐지이후

최근 대기업이 직접 나서 기업 소모성 자재 구매 전문 계열사나 대형 공구 백화점 및 소모품 할인 매장 등을 세우면서 지역 소상공인의 속앓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의 아이마켓코리아, 현대차의 바츠, SK의 MRO코리아, LG의 서브원 등 많은 대기업이 이미 기업 소모성 자재(MRO) 구매 전문 계열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MRO 전자 상거래 규모가 연간 200조원 내외로 추산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인데다 2007년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대기업 진출을 막을 길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은 계열사뿐 아니라 1,2차 협력업체 및 하도급 업체에게까지 구매 의뢰서를 보내는 등 소모성 자재 구매 자회사의 성장을 위해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불만이다.

인천산업유통사업협동조합이 KCC의 건자재 유통매장인 '홈씨씨' 인천점 개점과 관련, "상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사업조정 신청을 제기한 것도 이런 영세 상공인의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천에서 산업용 공구를 유통하는 업자들의 모임인 인천산업유통사업협동조합은 건축용 자재뿐 아니라 공구까지 취급하는 홈씨씨가 인천에 점포를 열면서 사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은 다행히 사업조정의 한 방식인 자율조정을 통해 홈씨씨가 취급하는 품목을 조정하고 조합측 우수 회원사들의 판로 개척에 KCC가 도움을 주며 서로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기업 A사는 최근 경남 창원 공구상가 단지 옆에 1만㎡가 넘는 규모의 대형 공구 판매점 건설을 추진, 소상공인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A사는 베어링을 포함, 주로 산업용재들을 파는 이 시설을 구미, 울산, 시화공단에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호민관실 관계자는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 소상공인의 도산과 폐업이 이어지며 국가 고용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중소기업 분야에 대기업이 신규 진입하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하긴 힘들지만 영국의 테스코와 프랑스의 까르푸 매장이 시 외곽에 자리잡은 이유, 서유럽 국가의 영업시간 제한 제도 등을 감안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상권 분쟁 '소비자 전문가' 참여케

정부가 사업조정심의회에 소비자 전문가를 심의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등 사업조정제도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소기업청은 8일 사업조정제도에 일부 내용을 보완한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조정심의회에 소비자 전문가가 심의워원으로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사업조정심의회는 대ㆍ중소기업의 상권 분쟁에 대한 강제조정안을 의결하는 기구로 그동안 심의위원은 주로 대학 교수와 정부 관계자, 법조인, 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

중소기업청은 "사업조정심의회에서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소비자 권리 보장 차원에서 보완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심의위원 자격 기준도 강화된다. 심의위원들이 특정 분쟁 당사자와 유착하지 않도록 연임 횟수를 1회로 제한했고, 부정한 행위를 하면 해촉할 수 있다는 규정도 추가됐다.

또 사업조정을 할 때 판단 근거로 활용되는 실태조사를 중소기업청장이 지정하는 전문기관이 수행하도록 해 객관성을 높였다. 아울러 사업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피신청인이 신청인의 서류를 열람할 수 있게 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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