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요즘 심정은 흡사 '개선장군(凱旋將軍)' 같을 것이다. 자신의 연임을 반대했던 교육과학기술부를 물리쳤으니, 이보다 더 감격스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길 가능성이 희박했던 전투에서, 그것도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겨졌던 교과부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빠져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KAIST 비사(秘史)에 기록될 수도 있겠다.
대학 총장이 교과부를 이겼다고? 이건 적어도 고등교육의 영역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에 총장이 반기를 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정책 등 대학 전반에 관한 사안이라면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온전히 총장 개인의 문제로 교과부를 눌렀다는 것은 전무후무하다.
서 총장이 시작한 게임은 총장 연임이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했던 그는 4년의 임기 동안 '개혁'이라는 코드 하나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대폭 강화해 교수들을 바짝 긴장시켰고, 학부 수업을 100% 영어로 강의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학점이 낮은 학생은 등록금을 징수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개혁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됐고 외국 대학에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 순위를 쑥 끌어올리는데 성공하면서 연임이라는 또다른 꿈이 그를 유혹했다.
무릇 개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공(功)이 있다면 과(過)는 반드시 따르는 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벗어나지 않는 진실로 봐야 옳다.
서 총장의 학교 운영을 지켜보던 교과부는 연임은 곤란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교과부가 왜 대학 총장 선임에 간여하느냐고?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KAIST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으로 관리 감독권이 교과부에 있다. 교과부의 지휘를 당연히 받도록 돼 있다.
교과부는 소통 부재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서 총장이 KAIST 발전에 기여한 측면은 인정하지만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주의식 운영을 계속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정부를 곤경에 빠뜨린 것 등이 연임 불가 이유였다.
웬만해선 포기했을법도한데 서 총장은 오히려 교과부를 상대로 전쟁에 돌입했다. 개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이 많다는 논리로 이사회 등을 상대로 일종의 연임 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결국 KAIST 이사회는 서 총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교과부 입장에선 굴욕(屈辱)이 됐다. 교과부는 내심 서 총장이 자진 사퇴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KAIST 측이나 이사회 등에 연임은 적절치 않다는 의사를 전했고, 이 정도면 서 총장이 조용히 물러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던게 화근이었다.
교과부 내부에선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고 한다. 관련 간부들이 아마추어 처럼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서 총장 연임을 둘러싼 갈등을 오히려 키웠고, 정부 생각과 정반대 결과로 끝난데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감독기관장 문제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을 넘어 문책 사안이라고 본다.
교과부는 서 총장에 잔뜩 약이 올라 있을 것이다. 서 총장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주시하고 KAIST 운영을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다.
서 총장으로서도 부담이 아닐수 없다. 이사회에서 연임이 확정된 직후 그는 소통을 부각시켰다. 뒤늦었지만 그래야 옳다.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는 대학이 되도록 하겠다"던 다짐을 지킨다면 '정부를 이긴 총장'은 잊혀질 수도 있다.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