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는 선교가 신학의 한 영역으로 우뚝 서 있지만 불교에선 '포교학'이란 말조차 낯설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구별 아래 사찰행정이나 포교를 담당한 사판승을 낮잡아 보고, 수행승이나 학승에 초점을 맞춰왔던 게 불교계 풍토이니 포교학이 제대로 설 리 없었다.
'도심 포교당 1호'로 불리는 서울 잠실 불광사(회주 지홍 스님)가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포부로 불광연구원을 개원한다. 불교 현대화와 도심 포교 선구자인 광덕(1927~1999) 스님의 사상을 집중 조명, 포교학의 전범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불광연구원은 10일 불광사 교육원 강당에서 개원식과 함께 1차 학술연찬회를 열어 광덕 사상을 조명하고, 앞으로 포교와 전법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불교계가 그간 포교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등한히 했던 것은 아무래도 지난 세기 불교계의 우선 과제가 불교 내부의 정체성 회복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왜색 불교 등으로 인해 내부 개혁이 중요했고, 깨달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컸기 때문에 포교는 부차적 문제로 취급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선 수행자 중심의 깨달음에 대한 강조가 포교 문제만이 아니라 불교의 사회적 참여와 실천을 약화시키는 결과로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포교는 대중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傳法)이라는 점에서 대승불교적 전통에서 보자면 중생 구제와 맞닿아있는 문제다. 불광연구원 측이 "포교와 전법에 매진한 선지식의 위상이 간과된 것은 곧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행이 등한시되었음을 의미한다"며 "연구원 개원은 포교와 전법의 중요성을 되짚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원이 포교학의 전범으로 내세우는 광덕 스님은 도심 포교당의 원조 격인 불광사 창건자이면서 현대 불교 대중화의 초석을 다진 스님으로 평가된다. 1950~60년대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광덕 스님은 조계종단의 기틀을 잡은 뒤 종단 행정실무에 적극 참여했고 1971년에는 총무원장 대행을 맡았다. 이후 종단 활동에서 한계를 느낀 그는 1974년 불광회를 꾸려 이른바 불광운동으로 불리는 다양한 포교 및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월간 '불광' 창간(1974년)과 불광출판사 설립(1979년)이 대표적. '불광'은 변변한 불교 출판물이 없던 상황에서 불교 교양지로 등장해 30여 년을 이어왔고, 불광출판사는 불교경전 한글 번역작업 등을 벌이며 지금까지 400여 권의 불교 관련 단행본을 출간했다. 광덕 스님은 1982년에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불광사를 건립했는데 이후 서울에는 구룡사, 능인선원, 삼보사 등의 대규모 도심 포교당이 속속 등장했다.
불광연구원 개원식과 함께 열리는 학술연찬회에서 '광덕 스님의 삶과 불광운동'이란 주제로 발표하는 김재영 박사는 광덕 스님의 포교와 불교 대중화 작업에 깔린 핵심을 '현장의식'으로 파악했다. 김 박사는 "현장의식은 철학적 사변이나 심오한 교학 체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실제적 처방이면서 세상을 바꿔가는 사회적 실천의식으로 작동한다"며 "현장의식과 사회적 실천의 상실이 불교 생명력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찰은 본래 민중의 쉼터였고 재활센터였다"며 "불광사 안에 재활센터와 쉼터를 배치한다면 광덕 스님의 뜻을 진실로 계승하는 불사가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광덕 스님 사상의 개요'를 발표하는 김선근 동국대 교수도 광덕 스님의 사상을 선사상, 반야사상, 화엄사상으로 요약하고 스님의 전법 활동에 담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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