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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영일만 친구들'은 어설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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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영일만 친구들'은 어설펐나?

입력
2010.07.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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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있다"면서 "정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어설픈 사람들이 정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저지른 권력 남용'이라고 에둘러 규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인식대로 이번 사건이 어설픈 공직자들이 간혹 저지르는 일탈 행위라면 그 파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야당이 주장하듯이 대통령 고향사람들이 주축인 비선조직에 의한 권력형 비리라는 혐의에서는 일단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공권력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압력을 가해 개인의 삶을 파탄 낸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하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과 정황들만으로도 그런 대통령의 인식은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인다.

언제나 지역정렬 현상이 문제

영일ㆍ포항지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인 '영포회' 또는 '영포목우회'가 이 사건에 얼마나 깊이 개입됐는지는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어느 지역이나 중앙부처에 진출한 공무원들이 친목 모임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포회가 5공 전후의 군 조직 내 하나회처럼 공직사회의 사조직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영포회 소속에 관계 없이 이 정부 들어 영일ㆍ포항 출신 또는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인사들이 핵심 포스트에 중용되거나 정권 차원에서 추진된 은밀한 작업에 동원됐다는 사실이다. 민간인 사찰의 핵심인 이인규 지원관이 영덕 출신이라거나 영일ㆍ포항 출신 유력인사가 직업공무원이 아니어서 영포회 회원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와 주요 기관의 핵심 요직에 지역 연고에 기반한 '우리 사람' 심기가 이뤄진다는 것은 일반화한 공식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광주ㆍ목포 출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부산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이 정부 들어서는 '영일만의 친구들'이 잘 나가고 있다. 일종의 지역정렬 현상이다. 이런 권력의 생리를 제어하지 못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지역 출신의 인사 독점 현상은 피하기 어렵다.

이런 폐해에 대한 내부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대세를 막지 못했다. 친이 주류의 한 사람인 정두언 의원은 "2년 전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 입장에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2008년 6월 촛불 정국 당시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들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가 근본 문제였다"며 특정 인맥 중용에 대한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정 지역 출신이 모인 조직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조직 내에 다른 생각을 하는 구성원이 아예 배제돼 잘못된 결정이나 행위를 걸러내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이번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도 영일ㆍ포항 출신의 '우리끼리' 분위기 속에서 별 죄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크다.

2008년 7월 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 기업인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을 시작했던 때는 촛불시위가 일단락되고 정권 차원에서 대책이 추진되던 시기다. 촛불세력과 전 정권 인사들의 관련성 내지는 결합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책을 강구한 흔적들이 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나중에 제기했던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의혹도 이 즈음 시작됐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고리로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그 언저리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씨에 대해 참여정부의 실세로 불렸던 이광재 강원지사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캐물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검찰이 사찰 진실 규명해낼까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단순히 공직자 기강을 단속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권 보위를 위한 별동대 비선조직이었다는 심증을 제기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민간인 사찰은 어설픈 사람들의 일과성 일탈일 수 없다. 민간인 사찰 수사를 떠맡은 검찰이 과연 이런 맥락을 어느 수준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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