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는 회계법인의 꽃이다.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사실상 파트너와 파트너 아닌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트너는 말 그대로 동업자.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의 주주 임원을 일컫는다. 입사 10여년이 지나 업무 능력을 인정 받은 소수만이 회사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데, 파트너가 되면 그만큼 연봉도 껑충 뛴다.
모든 회계사의 꿈이지만, 정작 파트너 자리에 오른 여성은 극히 드물다. 현재 삼일 삼정 안진 한영 등 '빅4' 회계법인에는 수백명의 파트너가 있지만, 이중 여성 파트너는 겨우 열 명 남짓. 이 중 네 명이 2003년 대형 회계법인 중 첫 번째 여성 파트너를 배출한 삼정KPMG에 몰려 있다.
서지희(48) 상무는 바로 그 '여성 1호 파트너'다. 다른 분야의 1호들이 그렇듯,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했고 지난 4년 동안 여성공인회계사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해 왔다. 삼정은 2004년에도 김은영(41) 상무를 파트너로 승진시켰고, 이후 김경미(42) 상무에 이어 이달 1일 권미경(39) 상무를 파트너에 임명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역삼동 GFC빌딩(옛 스타타워)에 있는 삼정KPMG 그룹 본사에서 네 여성 파트너들을 만났다.
이들은 꼼꼼하고 투명해야 하는 회계 업무의 성격이 여성에게 오히려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했다. 김은영 상무는 "국민소득 3만, 4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그만큼 사회가 투명해져야 하는데 회계감사야말로 투명 사회를 앞당기는 일"이라며 "비리 등에 연루되지 않고 정확하게 따지는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 말했다. 주로 외국계 기업이 고객인 권미경 상무는 "국내기업과 달리 외국계 기업들은 재무나 회계 분야 책임자들 중 여성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같은 여성끼리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회사의 어려움을 파악하거나 조언을 해 주면서 관계도 발전시키고 영업도 성사시킨다"고 말했다.
다른 커리어우먼들이 그렇듯, 여성회계사들도 가정과 직장의 병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성들도 견디기 힘들 만큼 야근과 출장이 잦은 게 바로 회계사다. 회계사 가운데 여성 파트너가 적은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서지희 상무도 1986년 입사 후 4년 만에 육아 때문에 그만 둔 경험이 있다. 김경미 상무는 "팀장 시절 임신을 했는데 상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6개월까지 비밀로 하고 다녔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서지희 상무는 "빅 4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여성 회계사 중 아이를 셋 이상 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은영 상무는 "기대주로 꼽혀 온 똑똑한 여성이 육아 문제로 '칼 퇴근'하는 외국계 금융회사 등으로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전했다.
이들은 어느 업종이든 우수 여성인재를 뽑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유연근무를 활성화하고 적극적으로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지희 상무는 "요즘 젊은 직원 중에는 육아에 적극적이고 가정적인 남성들도 많다"며 "남녀를 구분하지 말고 인생의 주기에 따라 탄력적인 근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기업이 우수인재를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회계업종의 여성인력 이탈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고 한다. 때문에 딜로이트가 5년 간 육아휴직을 허용하는 등 글로벌 회계법인들은 여성인재를 붙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실행 중이다. 이와 관련, 김명전 삼정KPMG 부회장은 "아직 외국기업처럼 여성인재를 붙잡기 위한 별도의 전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고학력 여성인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방침"며 "4명의 여성 파트너를 배출한 것도 이러한 신념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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