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85ㆍ사진) 전 국가기간고속도로 계획조사단장은 계획ㆍ설계ㆍ시공 등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 전반의 의사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한 증인이다. 1967년 육군본부 소속 대령(공병 병과)이던 그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 파견을 나가, 전국을 누비며 고속도로 계획 노선을 일일히 확인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청와대 집무실 벽에는 온통 지도가 가득했고, 박 전 대통령은 장관과 시ㆍ도 지사를 불러 자신이 직접 지도 앞에서 노선을 설명하기도 했죠."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의 전 과정에 걸쳐 실무 작업에까지 직접 참여했고 세부 노선 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상비를 책정하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놓고, 착공 후에도 공사 현장을 시찰 나와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해결해 줬다"고 회상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전권을 휘두르던 때였지만, 당시 경제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대공사라 국회와 언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윤씨는 "그땐 고속도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약해 '부자들 놀러 다니라고 도로 닦아주는 거냐'는 반대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농업이 최우선 산업이었을 때라 그 돈으로 차라리 비료공장을 더 짓자는 얘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재원 조달 과정도 험난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요청한 차관이 거절당한 것.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이 서독에서 빌려온 3,000만 달러에, 서독의 중계로 일본에서 받은 차관, 미국에서 받은 현물, 월남전 파병 대가로 받은 달러 등을 합해 겨우 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모두 동원된 셈인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착공시 공사비로 책정된 330억원(실제 공사비는 429억원)은 67년 국가예산(1,643억원)의 2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한마디로 국운이 걸린 토목 사업이었던 것이다.
윤씨는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일부 공구에서 육군 공병단을 중심으로 군 병력이 우여곡절을 거쳐 공사에 참여했던 경위도 설명했다. 군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미군 허락 없이 병력을 함부로 전용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이 이후락 당시 비서실장을 미 고문단에 보내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미군에게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받겠다"는 약속을 해 주고 나서야 3개 공병단을 빼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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