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꼬여가는 용산역세권개발 방정식에 해법은 없는 것일까.
건국 이후 최대 개발사업으로 꼽히는 용산역세권개발 프로젝트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난으로 토지대금 납부에 차질을 빚으며 수개월간 공전을 거듭한 데 이어, 추가 자금 확보를 둘러싼 사업 주주간 불협화음마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사업 좌초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사업이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투자사들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엇갈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의안이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 만에 하나 합의도출 실패로 사업 자체가 좌초될 경우, 용산지역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가늠하기 조차 힘든 파장을 낳을 것이란 게 부동산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움직일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에서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을 건져낼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해답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마찰 또 마찰
첫 번째 마찰은 재무적 투자자(FI)와 건설투자자(CI) 간의 대립. 이 사업에 돈을 댄 FI들이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시공사인 삼성물산으로 대표되는 CI에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급보증을 서줄 것을 요구했으나, CI가 이를 거부해 마찰을 빚었다. 이후 삼성물산은 지급보증 대신 ▦땅주인이면서 사업시행자인 코레일에 토지 중도금을 준공 때까지 연기해줄 것과 ▦서울시에 용적률 상향조정(608%→800%) 등의 카드를 제시했지만 코레일은 삼성물산에 '16일까지 밀린 토지중도금과 이자를 낼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계약해지도 불사할 것'이란 최후통첩으로 날을 세웠다. 계약해지란 사업좌초를 의미한다.
한 발 물러서야
사업주체로서 서로 입장차가 뚜렷한 코레일과 삼성물산, FI들이 워낙 팽팽히 맞서 있는 만큼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론 최선이다. 중립적 부동산관계자들이 제시하는 양보방안은 우선 토지대금을 받아야 하는 코레일의 경우 빡빡해진 PF여건 등을 감안해 중도금조건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 삼성물산 등 CI도 이 사업으로 수조원의 공사매출이 발생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수준의 PF 지급보증 등을 서서 사업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사업조건 변경의 경우 향후 특혜시비 등의 논란이 생길 수 도 있다. 그래서 양보 조차도 쉽지는 않다는 게 용산프로젝트의 복잡한 현주소를 말해준다.
힘들면 쉬어가라
전체 사업을 '원샷'에 추진하는 현재 계획을 수정, 아예 시차를 두고 단계별로 추진하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토지대금 납부에 들어가는 수조원의 자금부담을 덜 수 있는데다, 코레일도 토지대금 연체에 대한 걱정 없이 꾸준히 토지비 환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산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호황기때 추진된 사업이다 보니 사업내용이 공격적이고 시장침체에 대한 위기 대응이나 리스크 관리가 허술한 부분도 있다"며 "한꺼번에 모든 개발을 마무리한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 침체된 시장 상황을 반영해 사업 시기를 조정하고 단계를 나눠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CI측 관계자도 "사업이 단계별로 추진되면 투자자들이 받고 있는 자금 조달 압박도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일부라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자금순환 문제도 조금씩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과 재정비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민간이 주도하는 개발사업이지만 규모나 사업 의미를 볼 때 공공사업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또 사업주체간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문제해결에 나서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용산프로젝트의 범위를 확대시킨 만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의 일각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업주체간 이견이 심하다 보니 이를 조정할 민간 또는 정부 주도의 제3의 협의체나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일본의 경우 롯폰기힐스 등 도심 재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무이자 대출, 대출 채무보증, 소득ㆍ법인세 감면, 용적률 상향 등 금융ㆍ세제에 두루 걸친 정부지원이 이뤄졌다"며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인천국제자유구역 개발에 적용한 것처럼 용산역세권개발에도 조례와 특별법을 통한 지원책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ㆍ수도권 일대에서 진행중인 많은 공모형 PF 사업과 중복되는 부분에는 칼을 대고, 사업계획 변경 등을 통해 개발 콘텐츠를 새롭게 특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아 연구위원은 "용산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는 것은 금융 경색도 원인이지만 리스크 분담과 참여 투자사간 역할 분담에 대해 미흡했던 사업구도에도 책임이 있다"며 "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투자사간 역할과 책임, 개발 콘텐츠 등의 사업내용을 재정비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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