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 북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다고 한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채택도 되지 않을 사안을 중국과의 갈등까지 감수해 가면서 밀어붙이는 것은 어리석다.'
필자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 결과 발표 직전인 5월 18일 칼럼을 통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후의 상황은 필자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한국이 안보리에 이 문제를 회부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뚜렷한 성과는 안 보인다. 예상대로 중국은 북한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뛴다. 다른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러시아는 처음부터 애매한 태도를 보이더니 최근에는 한국에 파견했던 자국 조사단이 북한 소행이라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다 지난 칼럼을 새삼 들추는 것은 필자가 제대로 예측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대단한 예지력이나 분석력도 갖지 못한 보통 사람이 그저 상식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 쟁쟁한 한국 정부의 외교 관료들은 왜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아해서다.
중국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한국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방국이다. 따라서 중국이 안보리에서 북한을 지지하지 않아 북한이 중국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면 안보적 타격이 엄청나다. 바로 옆에 있는 우방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이 부각되면 중국의 국제 위상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은 절대 버릴 수 없는 카드인 셈이다.
한국은 천안함 사태를 다루면서 이 점을 간과했다. 한국이 중국과 관계가 나쁘지 않고 중국에 대한 영향력도 있으니 좀 강하게 얘기하면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힘센 미국을 통해 중국에 압력을 가하면 입장이 바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국제 역학이다. 설사 북한이 쏜 어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격려문과 사인이 적혀 있어도 중국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됐든 한국은 이 문제를 안보리에 제기했고, 이를 철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안보리 조치와 관련해 아무리 잘해야 의장 성명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제재에 대한 얘기는 쏙 들어갔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실질적 압박이 담보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은 굳이 강경 조치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정 안 되면 북한을 특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양보할 수도 있다. 대신 한국은 중국에게 다른 외교적, 경제적 반대급부를 요구하면 된다. 중국도 한국의 힘이나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고려해 한국의 반대급부 요구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천안함 사태 대처 과정에서 중국을 너무 가벼이 봤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렇지 않은데 한국인들은 중국을 우습게 보는, 허황된 분위기가 있다. 이런 것이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억울하지만 상대의 힘을 인정하고 거기서 최대한의 국가 이익을 찾는 실용적 자세가 이제라도 절실하다.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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