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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징후(徵候)를 무시하면

입력
2010.07.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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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독일의 한 작은 마을.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의사가 누군가 설치해 놓은 줄에 걸려 낙마해 크게 다친다. 이어 남작의 아들이 상처투성이로 발견되고, 농장에 불이 나고, 한 장애아가 린치를 당해 한 쪽 눈이 실명하는 사건이 터진다.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던 마을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영화 의 무서운 메시지

1일 국내 개봉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독일영화 은 지극히 불친절하고 냉담하다. 스릴러 형식을 취하면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정적인 화면에 불확실한 설명. 극적 반전이나 결말도 없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사건을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 특히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악의와 위선, 타락과 폭력을 통해 '징후'를 이야기한다.

자기 사고의 한계점을 아내에 대한 비뚤어진 협박과 복수심으로 드러내는 남작, 순수라는 이름 아래 억압과 폭력으로 자식들을 꼼짝 못하게 묶는 루터교 목사, 산파를 성적 노리개로 삼다 온갖 경멸로 매몰차게 내치고 어린 딸에게 추행을 일삼는 의사. 이런 어른들의 위선과 어긋난 도덕적 강요, 불신이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아이들은 반항하지도 울지도 않는다. 말도 없다. 침묵과 복종 속에서 반항하고, 어른들의 폭력과 위선을 비웃듯 악의를 드러내고 몰래 폭발시킨다. 목사인 아버지가 기르던 새를 가위로 잔인하게 죽이고, 남작 아들을 강물에 던져 버린다. 아이들의 증오와 폭력과 광기야말로 바로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목사는 자식들에게 천진함과 순수의 상징인 '하얀 리본'을 팔에 묶어주며 순수함을 잃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이들의 순수가 지켜질 수는 없다. 순수를 강조하지만 결코 순수하지 않은 시대, 소통 없는 일방적 강요 속에서 '하얀 리본'은 또 다른 위장과 위선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강요된 순수 뒤에 집단적 증오와 반항을 숨긴 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몰려다닌다. 마을에서 저질러진 린치와 방화에 대해 모른다는 얼굴로, 아버지의 매질을 잊은 듯 교회 성가대에서 경건하게 신을 찬양한다.

은 이런 아이들에게서 전체주의(파시즘)와 전쟁의 기운을 감지한다. 이들이야말로 곧 다가올 나치시대에 완장을 차고 순수주의를 부르짖으며 잔인한 인종학살과 전쟁에 앞장설 독일 청년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 1913년이란 시대배경이 1차 세계대전 발발 바로 한 해 전이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끝날 무렵, 사라예보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전쟁은 시작된다.

인류를 공포와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극적 사건도 징후는 이렇게 한 작은 마을에서 발견됐다. 그 징후는 다른 마을에서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마을이 있을지 모른다고 영화는 경고한다. 문제는 의 어른들처럼 자신들이 그런 징후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징후 자체를 무시하는 데 있다.

징후는 낌새로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 또는 일이 되어가는 야릇한 분위기를 말한다.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일방주의와 독선, 강요와 대립, 갈등과 적의도 징후라면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와 그에 따른 남북관계의 악화가 그렇고, 4대강 정비사업 찬반갈등으로 인한 사회분열이 그렇다. 연일 터지는 군기 빠진 군의 모습과 연예인 자살, 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도 그렇다.

징후를 보고 문제 예방ㆍ치유를

징후는 감지하는 순간 원인을 없애야 한다. 별것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 해가 바야흐로 저물려는 것을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의 추운 것을 알아야 한다.' 유안이 지은 의'설산훈(說山訓)'편에 나오는 말이다. 작은 현상을 보고 커다란 것을 깨닫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은 결코 지난 이야기나 엄포가 아니다. 그나마 날벼락이 아닌 징후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치유하고 예방할 기회가 있다는 말이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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