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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로댕'전을 보고] 소설가 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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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로댕'전을 보고] 소설가 윤대녕

입력
2010.07.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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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파리에 있는 로댕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1916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생전에 로댕이 살았던 유서깊은 건물이었다. 나는 좁은 현관으로 들어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로댕의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전시실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나 숨소리도 크게 낼 수 없을 만큼 경건한 고요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어느 동양인 여성을 발견했다. '발견'이라고 한 것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댕이 1887년에 제작한 '안드로메다'라는 작은 대리석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앞에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 바위에 묶인 채 곧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질 안드로메다의 비극적 운명을 떠올리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작품 자체의 완전함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녀가 그 순간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서 나는 정원으로 내려가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무더운 느낌은 없었다. 연못 중앙에는 단테의 에 나오는 '우골리노'의 석고상이 놓여 있었고, 미완성 작품들이 한쪽에 채석장처럼 쌓여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의 손_로댕' 전시회를 관람하러 가는 날도 그해 여름처럼 햇살이 따갑고 공기는 건조했다. 2층 전시실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마치 기시감처럼 다시금 압도당하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신의 손'이라는 대리석 작품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거친 돌덩이 속에서 방금 솟아나온 듯한 창조자의 손, 그 강하고 섬세한 손이 부드럽게 떠받치고 있는 대지의 일부, 그 대지 속에 서로를 탐닉하듯 웅크리고 있는 아담과 이브…. 그때 13년 전의 감동이 환각처럼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작품을 보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성급한 생각을 추스르며 '청동시대'로부터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사랑으로 빚은 조각'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따라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나는 '지옥의 문' 상부 중앙에 부조된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 '단테'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칼레의 시민'을 감상하는 일은 역시나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표정에 업습해 있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절망과 체념을 어느덧 나의 운명인 양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3층 전시실에서 서성이는 동안 나는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적 일생을 떠올리며 천재 예술가 옆에는 또다른 천재가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피카소가 그랬듯이 천재는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로댕은 신의 세계에 구속돼 있던 조각 예술을 인간의 세계로 전환시킨 장본인이자 또한 그 자신이 창조자가 되고자 했던 거인 예술가였다. 나는 다시 2층 전시실로 내려가 '신의 손' 앞에 서서 로댕이 일생을 두고 끊임없이 형상화하고자 했던 인간 내면의 카오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 우주는 곧 카오스이며 코스모스이다. 그렇다면 로댕은 혼돈으로 가득찬 인간 내면의 투시를 통해 우주와 대면하고 있었던 걸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지옥의 문'의 영감이 된 단테의 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술관을 바삐 돌아나왔다.

파리 로댕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댕의 대표작 18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ㆍ최대 규모의 로댕 회고전인 '신의 손_로댕' 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립니다. 1577_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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