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여러 양태에 대한 연극적 보고서 '당신의 자살에 건배를!'
자살은 현재 한국의 신드롬이다. 공산당선언을 흉내낸다면 자살이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형국이다. 인터넷 자살 클럽을 소재로 한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입선작 '눈사람'은 그 해 7월 극단 골목길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자살이 본격 연극의 소재로 신고식을 올린 셈이다.
극단 배우연구소true의 '당신의 자살에 건배를!'은 극단 골목길이 충실히 재현한 자살의 리얼리즘을 조밀화, 다양화시켜 내고 있다. 극단의 말마따나 자살 리포트라 할 만하다. 연출자가 있지만 극단은 집단창작이라 불러주길 원한다. 각종 보도, 웹에서 자살이란 주제 아래 취합될 수 있는 사실들을 단원 모두가 모았고, 연출자는 무대어법으로 재현했다는 의미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악몽이 재생산되는 다양한 현장을 다각도로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은 효과적이다.
'눈사람'의 경우 만화방이라는 공간에 한정해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을 풀었다면 '당신의 자살에 건배를!'은 옴니버스 형식을 빌어 청년 절망의 백태를 그린다. 최대한 연극적 해석을 자제하고 에누리없이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극사실주의적 태도는 무대라는 공간적 특성에 힘입어 하나의 괴물로 재현된다. 백수 청년과 호스테스, 지하철 외판 청년, 마사지 걸 등을 앞세워 88만원 세대의 누추한 삶을 재현한다.
"나 몰라주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보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빚만 쌓여가는 서민, 지하철 가판대로 내몰리다 못해 원금이나 찾게 해 달라며 드잡이를 벌이는 청년 상인 등 그 수위는 다양하다. 싸움 중 마네킹이 조각난다. 무대에 내팽겨쳐친 무수한 팔과 다리는 그들의 절망적 심정, 세상에 대한 적의 등을 효과적으로 상징하는 매개체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청년의 소일거리는 채팅 아니면 악플 달기다. 청년은 항상 사람 크기의 여자 인형을 끌어안고 살며 인형에게 말을 걸고 화풀이한다. 채팅 중 도를 넘긴 발언에 분이 터진 상대가 식칼을 들고 와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무대의 시선은 그러나 차갑다. 객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기를 원치 않는 이 무대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 '일주일 전' '이틀 전' 하는 식으로 자막이 나오면서 곧 나올 장면에 거리를 둔다.
배우들은 간간이 우리 가면극 중 덧뵈기 사용의 서양식으로 볼 수 있는 페르소나를 쓰고 나와 연기한다. 이 무대가 특정한 자살이 아니라 자살에 대한 일반론을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88만원 세대가 공유하는 절망의 외연을 쫓아간 이 무대의 결론은 자살자들의 영혼이 페르소나를 쓰고 나와 모두가 합창하듯 내뱉는, "대한민국은 타살 공화국"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쓰러진 무대, 컴퓨터 스크린만이 가득 확대돼 글자가 무수히 찍혀 간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하나" …. 오늘도 발신되고 있는 메시지들이다. 11일까지 챔프예술소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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