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 유니버설발레단의 '디스 이즈 모던'
#1. 색색의 불빛이 화려한 술집. 돈 호세는 다리를 11자로 하고 두 바퀴 공중돌기를 이어간다. 다리를 바깥쪽으로 고정하는 클래식 발레와는 사뭇 다르다. 이를 보던 카르멘은 숏컷에 짧은 튀튀(발레할 때 입는 치마)를 찰랑대며 그를 유혹한다. 음악은 조르주 비제가 1875년 발표한 '카르멘'.(국립발레단의 '카르멘')
#2. 텅 빈 무대에 금속성 전자음이 들린다. 녹색 레오타드(몸에 달라붙는 발레복)를 입은 무용수들은 긴장감 넘치는 점프와 발 동작으로 아름다운 선을 만든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무대는 스토리는커녕 몸짓조차 파악하기 힘든 무질서 상태로 치닫는다.(유니버설발레단의 '인 더 미들…')
올 여름, 국내 발레의 양대 산맥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유럽 모던발레를 선보인다. 클래식 발레에서 벗어나 레퍼토리의 다양화를 꾀하려는 시도다. 국립발레단은 모던발레의 초기작, 유니버설발레단은 최근작을 보여준다. 제작시기가 넓게 분포된 두 공연만 섭렵해도, 어렵다고 느꼈던 모던발레에 대해 좀 '아는 척'할 수 있다.
모던발레의 고전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은 20세기 유럽 발레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안무가 롤랑 프티(86)의 대표작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아를르의 여인'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무대다. 프티는 클래식 발레의 문법을 파괴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의 영향을 받아 연극적 발레를 탄생시켰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를르의 여인'은 물론, 다른 작품도 드라마가 뚜렷하다.
프티는 그러나 클래식 음악과 사실적 무대를 사용하는 등 고전적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남녀 무용수의 캐릭터와 의상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를르의 여인'은 김주원 윤전일, '젊은이와 죽음'은 윤혜진 이원철, '카르멘'은 김지영 김현웅 등이 출연한다. 15~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너무나 현대적인
유니버설발레단의 '디스 이즈 모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 7', 2001년 초연된 하인츠 슈푀얼리의 '올 쉘 비'를 묶었다. 해체와 파괴의 연속이다. 가장 큰 특징은 무대를 비워내고, 이야기 대신 몸에 집중하는 것. 역할이 모호하고 음악도 시대와 국경을 넘나든다.
패기가 분출되는 활달한 동작과 현대적 감성을 그대로 느끼면 된다. 몸의 언어만으로 유쾌한 장면을 연출하는 '마이너스 7'에서는 즉흥성을 중시하는 현 공연계의 흐름도 엿볼 수 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출신 한상이와 라오닝발레단 출신 리우 슈앙 등 새 얼굴을 볼 수 있다. 엄재용, 황혜민, 강예나, 이현준, 한서혜 등 출연. 16~18일 유니버설아트센터. 070-7124-1736
■ 롤랑 프티 러브콜 받은 김현웅 "몸만 예쁘다는 말에 죽도록 춤 연습"
"김현웅에겐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카리스마가 있다. 완벽한 몸과 내면의 아름다움, 그는 정확히 롤랑 프티를 위한 무용수다."(롤랑 프티 수석트레이너 루이지 보니노)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현웅(30)이 롤랑 프티 사단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앞서 그는 러시아의 전설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실감이 안 나죠. 발레를 시작하고 여섯 달 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생각나요. 만날 넘어지고… 두 바퀴도 못 돌던 꼴찌였는데." 스타 반열에 오른 지 오래지만 그는 "아직도 칭찬에 설렌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현웅은 늘 '몸이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 긴 팔과 다리는 외국 스태프들도 감탄하는 부분. 그는 그러나 "학창시절 '몸만 예쁘다'는 말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춤 잘 춘다는 말을 듣고 싶어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했다. 그런 그는 2~3년 사이 프라하, 룩셈부르크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표현력을 인정받았다. 악바리다.
이런 열의는 왼쪽 다리뼈에 아홉 개나 금이 간 상태에서도 2년을 더 춤추게 했다. 급기야 오른쪽 무릎 연골마저 파열돼 '유리 다리'가 되면서 어쩔 수 없는 휴식기도 가졌다. 전화위복이었을까. 올해 그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영입할 솔리스트로도 거론됐다. 현대 발레의 세 갈래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유럽, 미국에서 모두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더 올라갈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후배를 기대하며 끝없이 도망갈 것"이라고 말했다.
롤랑 프티는 이르면 내년에 그를 개인 발레단에 초청, '카르멘'의 돈 호세 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내일 일을 모르니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은퇴요? 제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느낄 때요. 그날은 무대 위에서 슈즈를 벗고 정중히 인사할게요."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