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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40> 평화누리 공원의 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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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40> 평화누리 공원의 철마

입력
2010.07.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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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되었던 경의선은 6ㆍ25동란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소위 비무장지대에서 끊어져 최근까지 분단의 상징이 되어왔다. 그러다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과 햇볕정책에 따른 2000년 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교류가 이루어져 북에 개성공업단지가 조성되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03년 비무장지대 내 파주 장단역을 거쳐 북과 철로가 연결되고 아울러 도로도 연결되었다. 파주 문산에서 임진강을 건너는 자유의 다리에 못 미쳐 평화누리 공원도 마련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 평화누리공원은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계기로 경기도에서 조성했다. 공원 내에는 자유의 동종이 마련된 종각이 있어 제야에는 경기도에서 타종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원 내 자유의 다리 옆에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원래 파주 장단 역에 있었다. 6ㆍ25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31일 폭격을 받아 철로를 이탈한 이후, 휴전되고도 50년이 넘게 녹슬어 방치된 채 있으면서 남북 분단의 상징물로 되어왔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이를 두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표현으로 남북의 통일을 갈망해 왔다. 경의선이 연결되면서 방치되어 있던 이 기관차를 문화재청이 2004년 등록문화재 제 78호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문화재청과 포스코 간에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체결하여 보존처리 결정을 하게 되었다. 3년여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드디어 2008년에 마무리 되고 2009년 6월 25일 현재의 위치에 전시해 이곳 공원에서 안보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재직 시절 군사보호구역내 문화유산 지표조사 10개년 계획을 마련, 3차 년도인 1993년 처음으로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답사가 불가능했으나 국가에서 실시하는 조사였기에 국방부와 유엔사령부의 협조로 무사히 현황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기관차는 폭격을 맞았다면 파괴되었거나 전복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총탄 자국과 함께 철로를 벗어나 땅바닥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철로에 깔아둔 레일은 다른 용도로 빼 가고 기관차만 남은 모습이었다. 뿐 아니라 기관차는 녹이 슬어 점점 썩어가면서 고철덩이로 변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2000년 남북 정상간 6ㆍ15공동선언으로 경의선 복구와 개성공단이 마련되면서 분단된 남북의 육로와 같이 철로가 연결되게 되어 자연스레 이 기관차는 대한민국의 근대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아울러 보존처리까지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등록문화재로서 보존과 아울러 이곳에 전시하는 목적은 이 증기기관차를 보면서 전쟁의 상처를 생각하고 나아가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위치인 장단 역에서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둠으로써 단순한 전시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원위치에 전시되어야 할 것이 엉뚱한 곳에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 경기도 장단역의 철로변에 있었던 제 위치로 옮겨 놓아야 더욱 실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이 되면 본래의 위치에 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보는 사람의 느낌이 보다 피부에 와 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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